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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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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통이 다하면, 기쁨이 온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처럼 우리의 신앙도 때로는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며칠 전 본당 홍보분과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편집하고, 음향을 관리하는 일은 보통 정성과 시간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기술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공동체를 위한 사랑과 헌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저는 인내 속에 피어나는 기쁨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첫영성체 사진을 정리하며 흐뭇해하고, 음향 테스트를 반복하며 고쳐가고, 송년 미사 영상을 밤새워 편집하면서도 미소 짓는 모습 말입니다. 처음에는 2명이 시작했는데 지금은 7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모임에는 가족도 함께 하기에 더욱 친밀해 보였습니다. ‘스테파노, 마태오, 레오, 요세피나, 글라라, 대건 안드레아, 아우스팅’, 여러분의 땀과 노력 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홍보분과 위원에게 감사드립니다. 생각하나 바꾸면 불편함이 나를 성찰하는 묵상이 됩니다. 아기의 출산은 분명 고통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곧 기쁨의 시간이 됩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박해와 순교는 고통의 시간이며, 절망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곧 행복의 시간이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물리적인 시간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의미의 시간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치의 시간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헤어짐의 슬픔은 기쁨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가치의 시간에서는 가난함도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가치의 시간에서는 아픈 것도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은총이 될 수 있습니다. 죽음은 단절과 허무입니다. 세상에서 이룬 모든 것들과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가치의 시간에서는 죽음도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로의 초대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두렵고 떨리는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이며, 기쁨입니다. 고통은 외면하고 싶은 것이지만, 사랑이 있는 고통은 생명을 낳고, 기다림이 있는 인내는 기쁨의 결실로 이어집니다. 마치 아이를 낳는 산모처럼 말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겪는 가장 깊은 고통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력감에서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력한 사랑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무력하게 돌아가셨지만, 그 사랑은 인류 전체를 구원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와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걸어서 먼 길을 갔으며, 때로는 매를 맞기도 하고, 멸시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주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치의 시간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역시 가치의 시간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신앙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하고, 공동체를 섬기며 사는 것이 때로는 고단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수고는 헛되지 않으며, 언젠가 하느님께서 달고 깊은 기쁨으로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홍보분과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우리가 모두 고진감래의 신앙을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해산할 때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