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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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순교 사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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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봉7 [gloria7] 쪽지 캡슐

2025-05-29 ㅣ No.182519

 

 

 

 

 

 

2025년 다해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순교 사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이유>

 

 

 

복음: 요한 12,24-26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순교의 길을 가야 합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순교를 말하면 누가 좋아할까요? 왜 죽어야 하는지, 죽는 건 고통은 아닌지 의아해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순교가 행복임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고통은 어디서 올까요? 부처님이 잘 보신 것 같습니다. 바로 집착에서 옵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바랄 때 지옥을 산다는 것을 체험합니다. 성경에서 부자 청년이나 롯의 아내를 생각해봅시다. 롯의 아내는 집착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자 청년도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예수님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는 집착의 고통에 대해 말합니다. 깊은 바닷속 인어공주는 인간 왕자를 열렬히 사랑하고 인간이 되어 그와 함께하고픈 열망에 사로잡힙니다. 이 집착적인 사랑 때문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내어주고, 걸을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끔찍한 육체적 고통을 감내합니다. 그러나 결국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이상적인 사랑과 특정 대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얼마나 큰 희생과 고통을 초래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 욕구가 다 채워지면 고통이 사라질까요? 그 고통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한. 왜냐하면 모든 집착은 생존과 연결되기에 생존에 집착하는 한 욕구에 집착하는 결과가 됩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영원한 삶에 대한 강한 집착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불로장생의 약을 찾기 위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동원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백성이 고통받았습니다. 정작 자신은 끊임없는 불안과 의심 속에서 살다가 영생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단순한 명상으로는 부족합니다. 어차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집착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까지 아깝지 않을 이유가 필요합니다. 목숨을 내어줄 이유는 사람 사랑의 의무입니다. 사랑은 목숨을 내어놓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의무가 될 때 결국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였던 자캐오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조지 엘리엇의 ‘실라스 마너’의 줄거리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실라스 마너는 가장 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공동체에서 추방당하며, 약혼녀마저 그 친구에게 빼앗기는 아픔을 겪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과 절망에 빠진 실라스는 '래블로'라는 새로운 마을로 이주하여 오직 베 짜는 일에만 몰두하며 은둔자처럼 살아갑니다.

 

 

    세상과의 모든 교류를 끊은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자 삶의 목적은 밤낮없이 일해서 번 돈, 즉 반짝이는 금화였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사랑과 신뢰를 잃은 공허함을 금화를 세고 어루만지는 행위로 채우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실라스의 전 재산과도 같았던 금화 항아리가 도둑맞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삶의 유일한 의미를 잃고 깊은 절망에 빠진 실라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새로운 빛을 가져다줍니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밤, 아편 중독으로 죽어가는 한 여인이 실라스의 오두막 근처에 쓰러지고, 그녀의 어린 딸 '에피'가 불빛을 따라 그의 집으로 기어 들어온 것입니다.

 

 

    처음 실라스는 금발의 아기를 보고 자신의 사라진 금화가 돌아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곧 살아있는 생명인 에피의 온기와 순수함에 점차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는 에피를 자신의 딸로 삼아 정성껏 키우기 시작합니다. 에피를 돌보는 과정은 실라스에게 잊고 지냈던 인간적인 감정과 사랑을 일깨웠습니다. 에피의 해맑은 웃음과 재롱은 그의 황금에 대한 집착을 서서히 밀어냈고, 그의 삶에 새로운 의미와 기쁨을 불어넣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에피를 통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에피는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고, 에피의 친아버지인 마을의 지주 고드프리 캐스가 뒤늦게 나타나 에피를 자신의 딸로 인정하고 부유한 삶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합니다. 고드프리는 과거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에피의 존재를 숨겼지만, 이제 후회하며 에피를 데려가려 합니다. 그러나 에피는 자신을 길러준 실라스 마너 곁에 남겠다는 확고한 선택을 합니다. 

 

 

    에피의 이러한 변함없는 사랑과 선택은 실라스에게 그 어떤 금화보다 값진 '참 행복'을 안겨줍니다. 그는 자신을 배신했던 과거의 기억이나 금화를 훔쳤던 도둑(던스탄은 이미 죽었지만)에 대한 증오, 그리고 에피를 버렸던 친아버지 고드프리에 대한 원망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에피의 사랑 안에서 그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운 존재로 완성됩니다. 

 

 

    사랑에 대한 의무는 어쩔 수 없이 다가옵니다. 여기서 에피는 마치 한 알의 밀알, 혹은 성체와 같습니다. 이것을 키워내면서 실라스를 모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었고 집착이 사라지지 용서도 쉬웠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것이고, 그래서 순교하라는 것입니다. 순교는 사랑의 한 방법입니다. 따라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을 의무로 삼는다면 집착에서 자유로워져 결국 이 세상에서부터 자유롭고 행복하게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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