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3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슬로우 묵상] 겨울 가지는 알고 있다 -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스크랩 인쇄

서하 [nansimba] 쪽지 캡슐

2025-05-29 ㅣ No.182520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요한 12,25)

 

 

예수님은 밀알의 비유를 통해,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자는 목숨을 잃고,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궁금해졌습니다. '목숨'과 '생명'이 어떻게 다를까.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헬라어 원문에 따르면,

‘목숨’은 프쉬케(ψυχ?), 곧 자아 중심적 욕망과 생존 본능을 뜻하며

‘생명’은 조에(ζω?),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참된 생명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성을 붙들고 살면 오히려 참된 생명을 잃게 되고,

자기 존재를 내어줄 때 오히려 진정한 삶이 열린다는 것이다.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은

바로 이 말씀을 삶과 죽음으로 증거한 분들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다보니,

이분들은 영생을 얻기 위해 단순히 육적인 목숨을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성령의 인도로 먼저 목숨(프쉬케),

곧 ‘나를 지키려는 본능’, ‘가문과 체면’, ‘유교적 위계질서에 대한 충성’을 내려놓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비움의 자리에서

그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존엄과 평등,

이웃에 대한 사랑을 삶의 중심으로 삼았고,

그것이 신분 질서에 얽매인 조선 사회에서는

‘불효’이며 ‘불충’으로 읽혔고,

결국 세상의 눈에 그들은 죄인이자 반역자가 된 것이었습니다.

 

나는 순교를 ‘극단적인 헌신’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순교의 본질은 존재 방식의 전환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비우고,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존재하며,

타인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그 삶 자체가

이미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나는 다시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붙들고 있으며,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나는 지금,

참된 생명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프쉬케에 갇힌 채

한 알 그대로 남아 있는가?

 

 

『겨울 가지는 알고 있다』


이 시는 '비움'과 '견딤'의 아름다움을 겨울 가지에 빗대어 묵상한 작품입니다.

삶에서 우리가 붙잡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일,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을 위한 공간 마련입니다.

‘잎이 없다고 끝이 아니었다’는 구절은 소유가 사라진 자리에야 비로소 본질적인 생명이 움튼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운 만큼” 깊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7 1

추천 반대(0) 신고

슬로우묵상, 부활시기, 요한복음, 윤지충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