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2일 (목)
(녹)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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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참행복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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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25-06-10 ㅣ No.182767

2025.6.10.연중 제10주간 화요일                                                              

 

2코린1,18-22 마태5,13-16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

“참행복한 삶”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소서."(시편119,135ㄱ)

 

어제는 늦췄던 봄소품이 있었습니다. 열두명의 수도형제들과 두분의 손님 신부 전부 열네분이 강원도 홍천에 다녀왔습니다. 소풍 내용도 나이와 취향을 고려하여 다양하게 배려했습니다. 오후 1시까지 세팀으로 나뉘어 저를 포함한 한팀은 공작산 수타사 절과 생태숲을 방문하여 산소길도 걸었고, 한팀은 홍천강에서의 래프팅을, 한팀은 홍천 온천원탕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사님들은 ‘육신의 때’를 씻었고 우리는 ‘영혼의 때’를 씻었네요.”

 

공작산 수타사를 방문했던 제가 온천을 다녀온 형제에게 던진 덕담이었지만 영육은 하나이기에 양쪽 다 좋은 정화의 시간이었음을 믿습니다. 오후 1시에 합류하여 열네 형제들이 <홍천 제일 숯불 닭갈비> 집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정말 주님 안에서 한가족, 한형제들임을 확인하는 공동체 소풍체험이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한팀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원장수사의 탄성같은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천차만별의 복장에 외모도 정말 달랐습니다. 정말 하느님 중심의 다양한 일치 수도공동체임을, 하느님 중심이 없다면 애당초 성립 불가능한 수도 공동체임을 실감했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공동체를 부요하고 풍요롭게 하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하나하나 귀하고 고유한 존재 자체가 공동체 세상의 소금과 빛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2부 성령강림대축일 행사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일 성령강림대축일에 이은 월요일 소풍이었으니 그대로 성령강림대축일 제2부 소풍에 닭갈비 성찬과 같은 점심식사시간이었습니다. 모두가 성령 가득한 싱그러운 모습들이었습니다. 새삼 하나하나가 공동체 고유의 소금과 빛과 같은 귀하고 고유한 존재들임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방문한 곳은 “홍천 수제 맥주학교 농담 브루어리”였고 여기서 주인의 설명도 들으면서 후한 대접에 손수 만든 수제맥주를 한껏 마시며 즐겼습니다. 차량이동시 많은 대화도 나눴고 저녁식사는 수도원 가까이 있는 별내 신도시에 소재한 “샤브올데이”에서 풍요한 시간을 갖고 일찍 귀가했습니다. 

 

수도형제들로부터 많은 것을, 특히 내 자신의 한계와 부족을 많이 배운, “겸손을 공부”한 “겸손의 학교”같은 하루의 소풍이었습니다. 공동체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 살아가는 ‘코스모스’같은 일상에서 때로는 재충전의 ‘카오스’와 같은 소풍의 필요성도 새삼 절감했습니다. 컴퓨터가 작동치 않을 때 껐다 키면 원활하게 작동하듯 때로 멈춰 관상과 놀이의 시간을 가질 때 원활한 삶입니다.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는 시편 성구도 생각났고 “멈추면 보이고 들린다”는 말마디도 생각났습니다.

 

어제부터 파스카 축제의 이벤트도 끝나고 다시 시작된 평범한 일상의 연중시기, 오늘 복음도 아주 적절합니다. 그 유명한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산상설교중 “참행복”의 진복팔단에 이어, 이제부터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라는 복음입니다. 믿는 이들의 영예스럽고 빛나는 신원입니다. 단숨에 읽히는 복음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세상에 속화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정화하고 성화하는 세상의 소금같은, 빛같은 존재로 살라는 것입니다. 정말 맛이간 인생이라면 존재이유의 상실입니다. 음식은 맛이가면 버릴 수 있지만 사람은 맛이가며 버릴수도 없습니다. 1년 농사는 실패하면 다음해를 기약할 수 있지만 사람 농사는 평생 농사라 하루하루 회개를 통한 치열한 삶이 필수요 이래야 맛이 가지 않은 세상의 소금과 같은 삶이겠습니다. 

 

세상의 소금입니다. 세상을 떠난, 세상과 격리된 소금같은 존재라면 역시 존재이유의 상실입니다. 소금처럼 자기는 녹아 사라지면서 공동체는 물론 자신의 삶에서 부패를 막아주고 맛을 내게 하는 방부제와 조미료와 같은 소금같은 존재로 사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과연 주변을 비추는 세상의 빛으로서의 삶인지요? 세상의 어둠이 아니라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 공동체의 빛으로서의 삶인지 묻습니다. 말그대로 주님을 반사하여 주변을 환히 밝히는 주님의 빛, 세상의 빛으로서의 삶입니다. 복음의 결론 말씀이 더욱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 의욕을 북돋웁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말이 아니라 착한 행실을 통한 언행일치의 삶자체로, 존재자체로 입증되고 검증되는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입니다. 참으로 한결같이 착한 삶과 말과 글이 일치를 이룰 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이요 감동을 선사하며 하느님께 찬양이, 영광이 되는 삶입니다. 어떻게? 바로 산상설교의 내용을 구체적 현장에서 살아가는 것이요, 바로 오늘 복음 앞부분의 참행복을 사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참행복의 사람들이자 동시에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이니 이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바로 사도 바오로가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할 것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을 닮아 단호히 결연히 한결같이 “예!”와 “아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진실하십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하면서 ‘아니요!’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는 ‘예!’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께는 늘 ‘예!’만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을 통해서 ‘아멘!’합니다.”

 

한마디로 정직하고 진실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와 ‘아멘!’의 삶”을, “찬양과 감사의 삶”을 살 때 역시 참행복한 삶에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삶의 실현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한결같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참행복한 삶을, 예수님처럼 “예!”와 “아멘!”의 참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네 앞길 주께 맡기고 그를 믿어라.

 몸소 당신이 해 주시리라."(시편37,5).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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