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6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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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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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6-25 ㅣ No.183031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이자,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특별히 이날은 저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25년 전, 저는 경기 북부 지역에 있는 적성 성당에서 본당 신부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구장 신부님으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았습니다. “사제 성화의 날 체험 발표를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처음엔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제게는 체험이라 할 만큼의 경륜도 없고, 사제들 앞에서 드러낼 만큼 영성이 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제안을 받고는, ‘그냥 내가 살아온 사제 생활을 나누는 거다라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발표 주제는 사목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저의 나눔은 교구의 사목 국장 신부님이 알게 되었고, 저는 교구청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뒤로 교구 사목국에서 3년간 교육 담당 사제로 일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정리했던 사목에 관한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첫째, 사목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진성아, 산보 갈래?’ 했더니, 진성이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곧장 따라나섭니다. 큰길을 건너고, 개울을 건너고, 시장까지 산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성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진성이가 묻더군요. “그런데 신부님, 산보는 어디에 있어요?” 아마도 산보가 어딘가에 있는 장소인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도 문득 하느님께 자주 되물었던 것들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당신 뜻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이미 다 보여 주셨고, 이미 다 알려주셨는데 말입니다. 사목도 그렇습니다. 사제가 되었으면, 어떤 사목자가 되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겁니다.

둘째, 사목은 시비(是非)를 가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해인사 청동 대불 문제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 한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비는 옳고 그름을 다툼으로써는 풀 수 없습니다. 시비를 함께 놓아버릴 때 끝이 납니다.” 부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원망은 원망으로 갚으면 해결되지 않고, 오직 참음으로써 해결된다.” 사목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옳고 그름을 끝까지 따져야만 하는 게 아닙니다. 때론 품어야 하고, 용서해야 하고, 묵묵히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리하셨습니다. 사목은 결국 사랑이며, 보시(普施)이며, 용서(容恕)입니다.

 

셋째, 사목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지 주일이었습니다. 미사 후 사제관으로 돌아가려는데 멀리서 건회와 진성이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는 겁니다. 성당 버스를 놓친 두 아이는 장현리에서부터 무려 3시간 반을 뛰어왔답니다. 그 길은 차로도 15분은 걸립니다. 그 아이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찡했습니다. 저 아이들이 오늘 제게 성지 주일의 진짜 의미를 알려주었습니다. 사목은 한 번의 만남, 한 번의 교리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모를 심는 일처럼, 끈기와 인내로 계속 관심 두고 기다리는 일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사목입니다.

넷째, 사목은 습관입니다.

사람은 이성으로 문명을 만들고, 감성으로 예술을 꽃피우고, 오성으로 보이지 않는 진리를 직관합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건 습관입니다. 좋은 습관은 타고난 재능보다 중요합니다. 사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한 신학 지식, 특별한 능력만으로는 사제다워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기도하는 습관, 교우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습관,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 습관 같은 것들이 사제를 사제답게 만듭니다.

 

1995년부터 한국 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정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이날은 사제들이 거룩한 삶을 다시 다짐하는 날이기도 하고, 교우 여러분이 사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할 필요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더 기뻐하신다라고 하셨습니다. 성심의 주님은 잃은 양을 끝까지 찾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사제들도 예수님의 그 마음을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저를 비롯한 모든 사제가 하느님의 거룩한 마음, 예수님의 성심을 닮은 착한 목자가 될 수 있도록, 교우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더 좋은 사목자, 더 따뜻한 사제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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