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5일 (수)
(백)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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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용서, 화해, 일치는 항상 ‘내가 먼저, 나부터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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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50 ㅣ No.183044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ㄴ-20).”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9,21-22)”

1) 당연한 말이지만, ‘화해’와 ‘일치’는 혼자서 하는 일도

아니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 이상이 ‘마음을 모아’ 청하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는데,

나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사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거나 어려운 일이라도

‘하느님의 힘’으로는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모을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청하는 기도는,

마음을 모으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바쳐야 할 기도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당신도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시는데,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자고 불러 모으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종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협력하는 것은 그럭저럭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자고 유물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을 초대한다면, 아무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일도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 하느님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남한과 북한의 화해와 일치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바쳐야만 하는 일입니다.

이미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고,

사람의 힘보다 더 크고 강한 하느님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분열의 원인과 책임을 따지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그것은 별로 의미도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서로 신뢰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나를’(우리를) 안 믿는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우리에 대한) 믿음을’ 주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만큼 나의(우리의) 진실하고 간절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2) 사실 남북 갈등보다 더 급한 일이

남남 갈등을 해결하는 일입니다.

도대체 진보와 보수가 무엇인지... 왜 이렇게 마음이 멀어져

있고, 왜 이렇게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인지... 왜 이렇게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이 너무 다른 것인지...

그 갈등과 대립이 교회 안에도 있다는 것은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마음이 모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마음을 모으자고 밖에 있는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을까?

<겉으로는 똑같이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보이고,

하나의 신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신앙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대하는 모습들입니다.>

3) 기도를 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라고 말합니다(야고 5,16).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죄인의 기도는 아무 힘이 없다.”가 됩니다.

회개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또는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간절하게 기도한다 하더라도, 그 기도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 즉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두 사람 이상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마음을 모아

기도하려면, 회개했거나 회개하고 있는 상태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죄인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마태 5,45),

죄인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분이지만, 그때의 죄인은

회개하려고 노력하는 죄인이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인이 아닙니다.>

4) ‘용서’는 언제나 항상 ‘내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이고,

‘화해’와 ‘일치’도 ‘나부터 먼저’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가 먼저’와 ‘나부터 먼저’ 라는 말은,

상대방에게 어떤 조건도 걸지 말아야 하고,

또 어떤 대가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네가 먼저 회개하면, 내가 너를 용서하겠다.”가 아닙니다.

용서부터 하고,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순서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그 은총에 응답하려고 우리가 회개합니다.

이웃을 용서하는 일도 같습니다.

그가 회개했기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시키기 위해서 용서합니다.

이것은 개인 사이의 일에도 적용되고,

국가 사이에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내가 먼저’가 아니라 항상 서로 ‘네가 먼저’만

주장하는 것이 남한과 북한의 큰 문제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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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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