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5일 (화)
(백)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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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나를 가두는 목소리, 자유를 주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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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봉 [gloria7] 쪽지 캡슐

2025-07-14 ㅣ No.183449

 

 

 

 

 

 

2025년 다해 연중 제15주일

 

 

 

<나를 가두는 목소리, 자유를 주는 시선>

 

 

 

복음: 루카 10,25-37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답하십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어떻게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그 근원적인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저는 그 힘이 바로 '시선', 나를 바라보는 사랑의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는 데서 시작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유 속 사제와 레위인은 강도 만난 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그들은 율법 전문가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잊었습니다. 바로 자신들을 끊임없이 사랑으로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시선입니다.

 

 

    저 역시 고속도로에서 사고 현장을 보고 119에 신고만 한 채 떠나온 부끄러운 경험이 있습니다. 그 후 저는 지옥을 겪었습니다. 구급대원과 경찰에게서 연이어 전화가 걸려왔고,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픈 사람을 길 위에 버려두고 왔다’는 죄책감이 심장을 찔렀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너무 크자, 제 안에서는 ‘그래도 나는 신고라도 했잖아! 다른 차들은 그냥 갔는데!’ 하는 자기 합리화의 목소리가 피어났습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며 제 죄를 가리려는 사탄의 속삭임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시선을 잊는 순간, 우리는 외면의 죄를 짓고, 자기 정당화라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이웃과 단절되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반면 사마리아인은 달랐습니다. 그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루카 10,33) 자신의 시간과 돈과 계획, 모든 것을 내어주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움직였을까요?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쉽니다. 

1985년, 망망대해에서 96명의 베트남 보트피플을 마주한 전재용 선장을 생각해 봅니다. 이미 25척의 배가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간 뒤였습니다. 희망이 꺼져가던 그들에게 전 선장은 단순한 구조선이 아니라, 인류애라는 이름의 응답이었습니다. 이 선택으로 직장을 잃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는 평생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또한, 물에 빠진 장애인을 구하기 위해 30분 넘게 밧줄 하나에 매달렸던 김태현 씨를 생각해 봅니다. 팔의 모든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고통 속에서 그를 버티게 한 것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라"고 늘 말씀하시던 경찰관 작은아버지의 목소리, 그를 바라보던 사랑과 신뢰의 시선이었습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소방관과 산소마스크를 나누어 쓰며 불길 속으로 다시 뛰어든 아버지의 부정(父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을 움직인 공통된 힘은 바로 **'정체성'**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형성된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 시선을 외면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일임을 알았기에, 그들은 자비로운 행동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 삶은 누구의 시선 아래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영적 싸움입니다. 사랑의 시선을 배신했을 때의 고통은 우리를 지옥으로 이끕니다. 

최근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즈'는 이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주인공 진우는 K팝 스타라는 성공을 위해, 자신의 꿈을 묵묵히 지원했던 어머니와 여동생을 차갑게 버립니다. 그는 악마와의 계약으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지만, 그의 내면은 한순간도 평화롭지 못합니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악마의 저주가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었던 가족의 사랑 가득한 눈빛, 그리고 배신당했을 때의 슬픈 눈빛에 대한 기억입니다. 이 기억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그는 자신을 지배하는 악마에게 다른 무엇도 아닌 그 기억을 지워달라고, 더 이상 가족의 시선을 느끼지 않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사랑을 배신한 자가 느끼는 그 시선의 고통이 바로 지옥 그 자체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마지막, 그는 모든 것을 잃을 위기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가족을 구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행위를 하는 순간, 그를 옭아매던 악마의 목소리는 힘을 잃고 그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기억을 지워서가 아니라, 그 기억, 그 시선이 원하는 사랑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의 시선은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줍니다. 영화「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수많은 전우들의 희생 끝에 살아남은 라이언은, 노인이 되어 가족들과 함께 자신을 구해준 밀러 대위의 묘비를 찾아옵니다. 그는 부와 명예, 모든 것을 가진 성공한 노인이지만, 묘비 앞에서 아이처럼 흔들리며 아내에게 묻습니다. “나, 괜찮게 살았어? 좋은 사람이었어?” 그의 전 생애가, 죽어가던 밀러 대위의 마지막 시선, “헛되이 살지 마라”는 그 한마디에 대한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평생 그 시선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고, 그 시선 앞에서 마침내 위로와 평화를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방식입니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밀러 대위와 같은 시선을 선물로 주십니다. “내가 너를 이토록 사랑했다. 이 사랑을 헛되이 만들지 마라.” 이 시선은 우리를 짓누르는 부담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별빛과 같은 선물입니다.

 

 

    우리 안에는 끊임없이 우리를 비난하고 이기심으로 이끄는 사탄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 목소리를 이기는 유일한 길은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시선 아래 사는 것입니다. 그 시선이 우리를 죄책감의 늪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우리를 자비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매일의 기도와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자비로운 시선을 느끼고, 그 시선에 응답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 시선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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