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은 우리 그리스도교로 치면 주일에 해당되는 날입니다. 말 마디 그대로 안식하는 날, 편히 쉬는 날입니다. 우리 인간의 신체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여, 제대로 쉬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앞만 보고 달린 끝은 참담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치명적인 병에 노출되고, 그로 인해 수명이 단축되고, 젊은 나이에 과로사할 가능성도 큽니다.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한 배려가 안식일 규정입니다. 그런데 그냥 안식이 아니라 주님 안에 안식입니다. 주님 사랑 안에 기쁨과 친교의 안식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크게 변질된 안식일 규정을 강하게 질타하시며 안식일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우리를 안내하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시작한 전도 여행길은 모든 것이 잘 갖춰진 럭셔리한 여행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노숙과 굶주림이 일상이었던 거친 여행길이었습니다. 오늘 제자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남의 밭에 심어져 있는 밀이삭을 뜯어먹었습니다. 아직 제대로 영글지도 않은 밀이삭, 무슨 맛이나 있겠습니까? 그런데 너무나 허기졌던 제자들은 찬밥 더운밥 가릴 정황이 아니었습니다. 밀이삭을 보자마자 우르르 달려들어 폭풍흡입을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바리사이들은 기가 차서 이렇게 따졌습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마태 12,2) 사실 안식일이 아니었다면 바리사이들이 그렇게까지 핏대를 올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 몇 가닥 밀이삭을 훑어 먹는 것은 율법이 허용하는 일이었습니다. “너희가 이웃의 포도밭에 들어갈 경우, 원하는 만큼 배불리 포도를 먹을 수는 있지만 그릇에 담아서는 안된다. 너희가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경우, 손으로 이삭을 자를 수는 있지만 이웃의 곡식에 낫을 대서는 안 된다.”(신명 23, 25-26) 보십시오. 굶주린 행인이나 걸인들을 위한 꽤 너그러운 가르침이요 유다 문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작심하고 몇 자루를 털어 농부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은 안 되지만, 허기진 사람들이나 여행객들의 허기를 채울 만큼의 포도나 밀이삭에 손을 대는 것은 큰 아량으로 눈감아주었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막지 않으신 것에 대해 따졌습니다. 그들의 엄격한 해석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지극히 사소한 일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에는 너무 먼 산보를 나가도 율법에 저촉되는 것이었습니다. 곡식을 비비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오직 섭생에 필요한 최소한의 일만을 허용했습니다. 마음이 바다보다 더 넓으셨던 예수님 눈에 바리사이들의 엄격주의는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었습니다. 활짝 열린 예수님의 시야에 꽉 막힌 바리사이들의 잣대는 견딜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발길 닿는 곳마다 그 잘난 안식일 규정을 산산조각내십니다. 그리고 외치십니다. 사랑 없는 율법은 종이쪽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음이 담겨있지 않고, 진정성이 사라진 예배는 그저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는 것을. 희생과 자비, 단식과 고행은 기쁨과 자발성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