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9일 (토)
(녹)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이루시려고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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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하느님을 섬기는 일과 신앙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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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07-18 ㅣ No.18353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1-8)”

1) 7절의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당신께

제물만 바치는 것을 바라시지 않고, 서로 자비를

실천하기를 바라신다.” 라는 뜻입니다.

<무엇인가를 많이 바친다고 해서 하느님을 잘 섬기는 것은

아니고, 서로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하느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하느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또는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바치려면, 하느님께서 받기를

바라시는 것을 바치는 것이 당연하고 옳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물이 아니라 자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비’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불우이웃 돕기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그것도 포함해서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앞의 9장에도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라는 말씀이 있는데(마태 9,13),

9장에서 말하는 자비는 “함께 회개하고, 함께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랑 실천”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제물을 잘 바치고 율법을 잘 지키는 자신들은,

하느님을 잘 섬기고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의인들이라고 생각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회칠한 무덤 같은 위선자들’이라고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셨습니다(마태 23,27-28).

2) 하느님께서 제물이 아니라 자비를 바라신다는 말씀에

대해서, “그러면 우리가 하느님께 바라는 것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바라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자비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원해야 하고, 그것을 청해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고,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 자비를 주시기를 원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우리도 이웃에게 자비를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에는 심판, 구원, 영원한 생명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하느님께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만 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이들의 신앙을 ‘기복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기복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사실상 미신입니다.

3) 바오로 사도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또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라고 말하고, 요한 사도는,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라고 말합니다.

사랑 실천 없이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나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

즉 거짓 섬김이고, 거짓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인의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실현되고,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4)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었을 때, 바리사이들은 제자들의 ‘배고픔’은 보지 않고,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것만 보았습니다.

바리사이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배고픔이

안 보였을까? 보였는데도 외면하고 무시했을까?

어떻든 배고픔은 보지 않고 안식일을 안 지키는 것만

본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자비가 없었음을 나타냅니다.

<무자비한 율법 실천 강요는 폭력일 뿐입니다.

사랑과 자비는 없고, 계명과 율법만 있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사이비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이야기’를 하신 것은, “율법보다 사람을

먼저 보아라.”, 또 “율법을 안 지킨다고 비난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사정을 헤아려 보아라.” 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음을 인정하셨지만, 그렇지만 ‘죄 없는 이들’이라고

제자들을 변호하셨습니다(7절).

안식일 율법을 안 지켰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정말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팠던 것으로 보입니다.

율법보다 제자들의 배고픔을 먼저 보아야 하고,

그들을 비난하기 전에 먼저 먹을 것부터 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사랑 실천의 기준은 항상 ‘나’가 아니라 ‘너’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

라는 ‘황금률’이 바로 그런 가르침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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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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