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6일 (토)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7-23 ㅣ No.183632

오늘 저는 삶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우러나온 한 신부님의 고백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620, 제 동창 신부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친구는 저보다 먼저 하느님 앞에 가서 인생이라는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작년에 제게 보낸 문자를 다시 읽어보니, 마치 떠나기 전에 남긴 고별사처럼 들립니다. 그 안에는 삶과 죽음, 고독과 연대, 예술과 신앙을 넘나드는 치열한 성찰이 녹아 있었습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로소 조금은 서글퍼하고 조금은 여유를 가지면서, 잔 속에 눈물처럼 술을 부으며 축배를 들고 싶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라 늘 새로운 시작이어라.”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저는 알베르 카뮈의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진정한 희망은 절망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친구는 떠나는 이가 아니라, 여전히 삶의 강물 앞에 서 있는 순례자였고, 언젠가 반드시 다시 출항해야 하는, 그러나 아직은 말랑한 지금을 살아내고자 하는 영혼이었습니다.

 

친구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죽어도 너는 살리라는 간절함으로, 언제나 이대로 홀수로 살 수밖에.” 죽음이 고립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살려내기 위한 간절한 염원이라는 고백. 홀수가 된 자의 외로움 속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자를 위한 기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깊은 우정이며, 성직자다운 사랑입니까? 친구의 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것이었습니다. “미완성이 곧 완성이다. 더 채워야 하지만 더 채울 수 없는 자리는 하느님의 영역이다.” 한 원로 조각가의 말을 인용하며, 친구는 미완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미완의 존재입니다. 이루지 못한 사랑, 다하지 못한 용서, 아직 다듬지 못한 성품 그러나 바로 그 미완성 속에, 우리는 하느님께 내어드릴 여백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완벽한 존재는 하느님뿐이고, 우리는 그분 앞에 열려 있는 상태로 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자세이고, 예술가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예술도 신앙도 결국 자신을 깎아내는 작업입니다. 날카로운 조각칼로 형상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기도와 고통, 사랑과 기다림으로 나를 다듬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르러, 우리는 더 이상 손댈 수 없음을 느낍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손을 멈추고, 그 완성은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는 경지. 그 순간, 우리는 깨닫습니다. “내가 다 못 채운 그 자리를 하느님께서 채우시겠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친구는 복음을 보고 들으며 살았습니다. 고독과 싸우며, 성찰과 사랑의 실마리를 따라갔습니다. 세상은 친구를 반만 죽어 반은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았지만, 친구는 그 미완의 시간마저도 은총으로 받아들이고자 했습니다. 친구는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갑자기 나는 종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듣고 싶다. 그것은 끝과 시작의 감동이었으며, 늘 새로운 시작이어라.” 삶은 종강이지만, 동시에 새 학기의 개강입니다.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새 시작의 문입니다. 우리는 이 미완의 강의실을 정리하고, 하느님의 새로운 강의실로 옮겨갈 뿐입니다.

 

이제 저는 친구에게 마음속으로 편지를 써봅니다.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친구의 죽음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삶은 길이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삶은 의미사랑믿음으로 평가됩니다. 친구는 비록 먼저 이 세상을 떠났지만, 복음 말씀처럼 주님의 눈과 귀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낸 축복된 삶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친구가 남긴 미완의 삶 앞에 서 있습니다. 그 미완을 하느님께서 완성해 주시리라 믿으며, 저 역시 삶 속의 미완을 사랑하고, 그 틈 사이로 비치는 하느님의 빛을 찾아 나가려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54 4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