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일 (수)
(백)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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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영적 승리의 주님의 전사(戰士)들 “영적(靈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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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25-09-02 ㅣ No.184568

2025.9.2.연중 제22주간 화요일                                                           

 

1테살5,1-6.9-11 루카4,31-37

 

 

영적 승리의 주님의 전사(戰士)들

“영적(靈的) 전쟁”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오늘 화답송 시편입니다. 이런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 백전백승, 천하무적의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어제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꼭 강론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때로 일기쓰듯 하는 강론인데 오늘이 그렇습니다. 어제 서울교대 8회 반 동창 친구들 11명을 만났습니다. 1970년 8월 현역입대전 함께 공부했고 그이후 교직생활은 물론 수도생활중, 2025년 지금까지 한번도 못만난 친구들이니 무려 55년만입니다. 그때는 20대 초였고 지금은 70대 후반에 들어선 친구들입니다. 기적이자 은총의 열매같은 만남의 선물이었습니다.

 

저의 불편을 배려하여 별내역 근처의 음식점에서 만나 식사했고, 이후 차로 10분 거리인 제 정주처인 요셉수도원을 방문해 오후 4시 30분까지 제집무실에서 환담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도원에 오자마자 친구들이 마련해온 꽃다발은 성모님 앞에 놓았고, 모두 성전에 들어와 잠시 기도시간도 가졌습니다. 

 

가톨릭신자 다섯에 개신교 장로들을 포함 1명 불교 신자를 제외한 모두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었습니다. 한 친구딸은 14년전 수도원 피정때 제게 면담성사후 제 친필로 싸인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책을 선물받았다는 내용도 후에 전해 주었습니다. 

 

수도원 성전에서 나와 정원에서 사진찍은후 집무실에 들려 행복기도문을 나눠주고 제가 읽고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음미했습니다. 이어 제 수도생활을 요약한 또 제 삶 전부가 담긴 좌우명 기도문, “하루하루살았습니다”를 돌아가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휴대폰마다 <하늘과 산>의 수도원 로고를 붙여줬고 설명도 분명히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많이 감동했습니다. 평생 초등학교에 선생님으로 몸담았던 친구들이라 초등학생처럼 맑고 순수한 모습에 언행들이었습니다. 고분고분 말 잘 듣기가 70대 후반에 손주들을 둔 할아버지 친구들인데 그대로 초등학생같았습니다. 정말 어렵던 시절 1969-1970년까지 교대 2년동안 동고동락했던 학우이자 형제이자 전우같은 동창들이었습니다. 

 

또 놀라운 것은, 1970년대초 20대때 가난과 불편으로 뾰족했던 각자 고유의 부족한 모습들이 <나라의 발전>과 더불어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 또 치유받아 둥글둥글 원만하고 평화롭게 변한 모습들이 서로 비슷하게 닮은 형제들 같았습니다. 서로간 55년동안 우정을 나눴기에 화기애애한 대화 모습도 참 편안해 좋았습니다. 영적전쟁 치열했던 세상 한복판에서 상처받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흡사 영적전쟁에 승리한 주님의 전사들 같았습니다. 

 

떠나고 나서도 향기처럼 남아있는, 또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잠자리 들기전까지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믿는 이들에게 삶은 영적전쟁이요 제대가 없는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들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어제 공생애가 시작되자 마자 출사표를 던진 예수님께 현장 영적 전투가 시작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하느님의 전사, 예수님입니다. 

 

첫 번째 회당에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니 그대로 영적승리를 상징합니다. 오늘날 역시 영적전쟁의 인간현실은 여전히 계속됩니다. 아니 더욱 치열해 지는 사회 현실이나 자살자들이나 곳곳에서 정신질환으로 많이 고통을 받는 것만 봐도 알수 있습니다. 더러운 영들은 다양하기가 한둘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망과 꿈을 잃고 갖가지 더러운 영에 들려 내외적 분열과 불화, 상처의 아픔에 시달리는 지요!

 

답은, 영적승리와 내외적 치유의 길은 단 하나 하느님의 전사 예수님과의 만남뿐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으니 그분의 말씀에 권위와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축출 과정을 통해 주님의 전사로서 예수님의 권위의 정체가 잘 드러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고백하는 더러운 영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꾸짖으시니, 마귀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혼비백산 달아납니다. 예수님의 통쾌한 영적승리입니다. 그러자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몹시 놀라 고백합니다.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여기서 권위는 희랍어로 “엑스우시아” 즉 “존재로부터 나오는(ex-ousia)”것을 뜻하며, 라틴어로 ‘아욱토리타스(auctoritas)’는 “증가시키다’ 라는 동사 ‘아우게레(augere)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니 참 권위는 하느님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악령을 제압하는 힘의 권위, 이웃을 살리는 권위, 치유하는 권위, 성장시키는 권위, 섬기는 권위,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답게 하는 권위, 어른이 되게 하는 권위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권위는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양의 노력과 더불어 내적중심의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저절로 승복하게 하는 은총의 선물같은 권위임을 깨닫습니다. 권위주의는 나쁘지만 참권위는 공동체 삶에는 필수입니다. 권위있고 반듯한 어른이, 부모가, 교사가, 장상이, 성직자가 절실한 혼란한 시절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복음의 마귀들린 사람은 삶의 중심에 주님을 모시지 않을 때 우리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그러니 삶의 중심에 살아 계신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전사로 주님과 우정의 관계를 날로 깊이할 때 영육의 건강과 더불어 권위있는 삶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그대로 닮은 주님의 전사, 바오로의 말씀이 주님의 전사로서 우리의 신원을 분명히 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니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씁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혼자의 영적 전투가 아니라 더불어의 영적 전투입니다. 그러니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 예수님을 모시고 서로 영적 전우로서 영적 전우애를 발휘하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저마다 성장할 수 있도록 서로 영적 버팀목이 되어주는 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하고 영적승리의 권위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네.“(시편27,4).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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