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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연중 제22주간 화요일 강론>(2025. 9. 2. 화)(루카 4,3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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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권위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루카 4,31-37).” 1)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카파르나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자기들을 압도하는 ‘어떤 힘’을 느끼고 몹시 놀랐다는 뜻입니다. 36절,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라는 말은, 자기들이 압도당한 그 ‘힘’이 ‘하느님의 힘’이었음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마귀들은 사람의 명령에는 절대로 복종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마귀가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고 떠난 것은, ‘예수님의 명령은 곧 하느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예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권위’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는 ‘예수님은 하느님이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힘을 가지고 계시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이지만, 예수님을 ‘사람으로만’ 생각한 이들에게는 예수님께서 그 힘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2) 나중에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에게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습니다(루카 9,1). 사도들은 자신들이 받은 그 힘과 권한으로 ‘많은 마귀’를 쫓아냈습니다(마르 6,13).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당신의 힘과 권한을 주신 일은, 아주 넘겨주신 일이 아니라, 위임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예수님의 대리자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냈습니다. 사도들 자신들의 힘으로 쫓아낸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힘으로만 쫓아내려다가 실패하는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마르 9,28).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려면, 또는 기적을 일으키려면 항상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해서 아무나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바로 그런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마자로 돌아다니는 몇몇 유다인까지도 ‘바오로가 선포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령한다.’ 하면서, 악령 들린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런데 스케우아스라는 유다인 대사제의 일곱 아들이 그렇게 하자, 악령이 그들에게 ‘나는 예수도 알고 바오로도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 하였다. 그때에 악령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모조리 억누르고 짓누르는 바람에, 그들은 옷이 벗겨지고 상처를 입어 그 집에서 달아났다(사도 19,13-16).” 믿음도 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시도한다면,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일이 될 뿐입니다.
3) 우리는 복음서에 카파르나움 사람들이 놀랐고, 소문을 퍼뜨렸다는 것만 기록되어 있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몇 명 정도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놀라기만 했고, 그것이 믿음으로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뒤의 10장을 보면,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라고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리 놀라운 일을 목격하고 체험해도, 자동적으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만이 변화되고, 변화된 사람만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인간 세상의 인간적인 권위는 인격과 인품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의 힘’이고, 그것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하느님 자비의 힘’입니다. 그 힘이 가장 잘 드러난 일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눈으로만 보면, 아무 힘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신 일로 보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신 일이고, ‘하느님 자비의 힘’의 위대함을 잘 드러내는 일입니다. 바로 그것을 깨닫고 믿게 된 어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라고 고백했습니다(마르 15,39). <그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믿음 없는 자들’은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독했습니다(마르 15,29-32).>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