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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를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하신 최초의 교황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0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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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인은(그레고리오 1세 또는 대 그레고리오) 이미 두 명의 교황을 배출한 로마의 부유한 원로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법학 등 고등 교육을 받고 573년 로마 시장이 되었다. 574년경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부모의 저택을 성 베네딕토의 규율을 따르는 성 안드레아 수도원으로 만들고, 거기에 입회하여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의 소유에도 수도원을 더 세웠다. 578년 교황 베네딕토 1세에게 부제품을 받고, 이듬해 교황 펠라지오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의 교황 대사로 파견되었다. 590년 교황 펠라지오 2세가 선종하자 그는 수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만장일치로 제64대 교황에 선출되었다. 성인은 교회법을 정비하고 무능한 성직자들을 해임과 영적 쇄신을 강조하고, 기아에 시달리는 시민들을 구호하기 위한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지혜롭게 교황청 재산을 관리했고, 부당한 박해를 받던 유다인들을 보호하였다. 그는 중세 교황권의 창시자로 평가될 만큼 활동적인 교황이었다. 593년 이민족이 로마를 침공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직접 그들과 담판을 지어 로마의 평화를 지켜냈다. 이로써 그는 그들의 왕과 함께 평화의 수호자로서 존경받았다. 이렇게 성인은 위대한 유능한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였다. 성인은 라틴 교부의 일원이자 서방교회의 전통적인 4대 교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중세 교황권의 창시자로 평가된다. 또한 그의 학덕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실제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레고리오 전례서’를 통해 교회의 성가를 재조정하고 그레고리오 성가도 제정하여 그레고리안 성가의 편집자로 추앙받고 있다. 이러한 방대한 저서에 담긴 그의 사상은 서방 교회의 신학과 전례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유럽의 역사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베네딕토 수도회를 교황의 직속으로 둔 성인은 교황의 전통적 상징인 예복과 삼중관을 쓰고 있고, 방대한 저서와 그레고리안 성가를 상징하는 책이나 악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비둘기가 주로 그려지는데, 이는 그가 방대한 작품을 저술할 때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그의 귓전에 머물며 영감을 불어넣어 주셨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이처럼 고대에서 중세로의 전환기에 그의 다양한 활동과 영성적 위대함으로 인해 ‘대교황’이란 호칭으로 불린다. 그는 604년 3월 12일 로마에서 선종하여 성 베드로 성당에 안장되었고, 사후 즉시 성인품에 올랐다. 축일은 선종한 날인 3월 12일에 지내오다가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과 함께 라틴 교회에서는 그가 교황으로 착좌한 9월 3일로 옮겨 기념한다고 전한다. ‘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누가 더 높으냐? 식탁에 앉은 이냐, 아니면 시중들며 섬기는 이냐? 식탁에 앉은 이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이처럼 성인께서도 교황이 교회 최고의 권위임을 확립하면서도, 교황을 일컫는 칭호인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함으로써, 교황이 지배의 자리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리임을 분명히 했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0903](루카 22,2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