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9일 (월)
(백)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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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사랑 실천은 내가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이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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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09-28 ㅣ No.18514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루카 16,19-26)”

1) 부자가 아브라함을 ‘할아버지’ 라고 부른 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즉 이스라엘 사람이며,

하느님을 믿고 있고, 하느님의 계명들과 율법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라자로를 보내시어” 라는 말은, 그 부자가 라자로를

알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라자로가 대문 앞에 누워서 구걸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라자로의 처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라는 말에는, “제가 라자로에게

빵 부스러기를 준 것처럼”이라는 말이 숨어 있습니다.

<라자로에게 빵 부스러기를 주었으니

한 방울의 물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21절의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라는 말은, 부자가 오며가며

라자로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져 주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것은 배고픔을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하는

아주 적은 양이었습니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라는

말은, 표현으로는 개들이 라자로를 괴롭혔다는 말인데,

뜻으로는 부자가 던져주는 아주 적은 양의 빵 부스러기를

개들이 빼앗아먹었다는 말입니다.

<그 상황에서,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라는 ‘어떤 가나안 여자’의 말이

연상됩니다(마태 15,27).>

2) 부자가 마치 개들에게 던져주듯이 라자로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져준 것은 라자로를 심각하게

‘모욕’한 일입니다.

그런 행위는 ‘사랑 실천’이 아니라 ‘죄’입니다.

아마도 부자는, “나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충분히 했다.” 라고 생각하면서 잘난 체 했을 것입니다.

사랑 실천은, ‘나’를 기준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방’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라는

계명을 생각하면(마태 22,39),

‘사랑은 같아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먹고 남은 것을 조금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함께 먹든지, 함께 굶는 것이 사랑입니다.

3)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는

아브라함의 말은,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독점’했고” 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사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들은 ‘그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자신의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한 것도 죄이고,

혼자서 독차지하면서 나눔을 실천하지 않은 것도 죄입니다.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는 말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나쁜 것들만 주셨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들이

라자로에게 좋은 것들을 나누어주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자들이 독점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라는 말은, “하느님의

심판은, 한 번 끝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선고는 아무도 뒤집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심판결과는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각자가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심판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살아 있는 동안에’ 회개하고,

잘못하고 있는 것들을 ‘지금’ 바로잡아야 합니다.

4)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뒤의 18장에 나오는 부자의 이야기에 연결됩니다.

“너에게 아직 모자란 것이 하나 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루카 18,22).”

“그는 이 말씀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다. 그가 큰 부자였기

때문이다(루카 18,23).”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루카 18,24-25).”

<어쩌면 ‘라자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시험지’ 같은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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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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