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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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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끔 만나 식사하는 젊은 부부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집 축성도 하고, 차 축성도 했던 부부입니다. 그들은 이제 아이를 키울 집을 찾고 있었습니다. 수영장이 딸린 이층집과 마당이 넓은 단층집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층집은 멋있고 구조가 좋아 보이지만, 단층집은 생활이 편리하고 어르신들에게 적합합니다. 매사에 신중한 부부이니 결국 좋은 선택을 하리라 믿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우리는 B와 D 사이에서 살아가는데,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늘 C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B는 Birth(탄생), D는 Death(죽음), C는 Choice(선택)입니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이 우리 존재를 규정합니다. 성경도 선택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창세기는 아담과 하와의 선택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낙원의 모든 것을 맡겨 주시면서 단 한 가지, “선악과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창세 2,17)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그 열매를 따 먹었고, 그 결과 낙원에서 쫓겨나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고,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리라”라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판도라는 열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자를 열었고, 그 속에서 슬픔과 질병, 전쟁과 질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희망’이었습니다. 인간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고통을 맞이하지만, 동시에 하느님께서 남겨주신 희망 안에서 다시 살아갈 길을 찾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번영,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어서 “너와 네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하라”라고 권고했습니다. 신앙의 길은 결국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세상의 영광을 따를 것인지, 하느님의 뜻을 선택할 것인지는 우리 자유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우리 삶의 방향과 영원을 결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실패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죽음을 부활의 영광으로 바꾸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서 절망에서 희망으로, 두려움에서 용기로, 원망에서 감사로 변하였습니다. 성령의 힘을 받아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는 파견 사명을 담대히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삶에서 매일 작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 선택이 하느님을 향한다면, 비록 지금은 좁은 길처럼 보여도 결국은 생명과 평화의 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신앙은 선택입니다. 세상의 유혹에 이끌려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희망을 주시며 다시 선택할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분의 길을 따르는 선택을 한다면, 우리 삶은 “시냇가에 심겨 제때 열매를 맺고, 그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처럼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하느님 안에서 복된 선택을 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