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루카 6,17
기도 속에서 태어난 이름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묵상할 때마다 나는 특별한 장면을 떠올린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적듯 신에게 계시를 받는 모습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중요한 일을 고요한 중에 긴밀히 의논하는 모습이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서 아버지와 깊이 대화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식별하셨을 것이다. 그 친밀한 관계 속에서, 그 기도의 시간 안에서 열두 사도의 이름이 태어났다.
나의 이름도 예수님의 기도 속에서 태어났을까.
사도 시몬과 유다를 기억하는 오늘, 나 역시 예수님의 기도 속에서 불려 나온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복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본다.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루카 6,17).
예수님께서 당신이 부르신 이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셨다. 산에서 그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혼자 떠나보내지 않으셨다. 함께 산에서 내려오셨다.
내가 복음을 묵상하는 이유는 하느님을 향해 올라가기 위함만이 아니다. 하느님과 함께 세상으로 내려오기 위함이다. 묵상을 마치면 예수님은 나를 혼자 세상으로 내려보내지 않으신다. 함께 내려와 나와 함께 서신다. 이것이 복음이 주는 위로이고 힘이다.
나는 지금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이런 순간엔 두려움이 일어난다. 세상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다시 산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기도 안에만 머물고 싶어진다. 이건 회피다. 진짜 결정하고 싶을 땐, 그저 잠시 침잠해 그분과 만나면 된다. 그러고 나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 평지에 서 계시며 뿜어내시는 힘, 그 사랑의 에너지, 생명의 에너지가 나로 하여금 증거하는 선택을 하도록 한다. 나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기념하는 사도들은 예수님의 현존과 이 생명의 에너지를 체험하면서 박해 시대에 희망의 증거자로 살아가셨다. 성 유다는 유다서에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자신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유다 21). 사도들은 하느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면서, 동시에 이 사랑의 힘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통로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로 이어지는 살아있는 복음이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다. 나는 미약하다. 그러나 나와 함께 평지에 서 계신 그분에게서 힘이 나온다. 그 힘이 지금 내가 돕고자 하는 이들에게 흘러가리라 믿는다.
기도 속에서 내 이름은 태어났고, 예수님의 기도는 초월의 하느님께 닿는 길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하느님이 일하시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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