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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5일 (수)
(녹)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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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주님의 제자다운 삶 “따름, 버림, 자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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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07:43 ㅣ No.186095

2025.11.5.연중 제31주간 수요일                                                             

 

로마13,8-10 루카14,25-33

 

 

주님의 제자다운 삶

“따름, 버림, 자유, 사랑”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 빛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시편112,4)

 

위령성월인 11월은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며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는 달입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 질문으로 직결되어 참으로 잘 살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성 베네딕도의 말씀도 참 많이 나눴습니다. 

 

죽음을 생각할 때 주님의 제자답게 회개와 더불어, 거품이나 환상, 허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겸손하고 순수하며 진실한 삶을 살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대로 잘 살아야 제대로 잘 죽을 수 있습니다. 가을엔 모두 이쁘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제의 <가을엔>시가 좋아 다시 나눕니다.

 

“가을엔

 이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모두가 이쁘다

 작은 풀잎, 나뭇잎들...

 사랑으로 타오르는 단풍되니

 모두가 이쁘다

 너도 이쁘고 나도 이쁘다”<2000.11.16.>

 

속초에서 할머니들을 돌보고 있는 어느 자매의 이 시에 대한 답글입니다. 

 

“신부님 주신 멋진 시, 할머니들과 같이 

 읽고 나눴어요. 

 모두 기뻐하시고 

 신부님 멋진 분이시라고 하십니다.”

 

누구나 이쁘게 살다가 이쁘게 죽고 싶은 것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레오 교황의 11월 기도 지향은 “자살의 방지를 위해(for the prevention of suicide)”이며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싶었습니다. 교황은 “투쟁중인 분들과 동반하기”, “모든 아픈이들에게 친절, 다정함, 애정을 제공하기”,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No one is immune)”며 자살 예방에 구체적 처방도 제시했습니다. 살면서 자살의 유혹을 겪지 않았던 이들은 아마도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수도원 게시판에는 오틸리엔 연합회에 속한 두 수도자의 부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1.“폴커 보덴뮐러 신부님은 오랜 기간 쇠약해진 끝에 성 오틸리엔 수도원 양로원에서 평화롭게 잠드셨습니다. 간병의 필요성이 증가했던 지난 몇 년 동안, 그분은 조용하면서도 언제나 친절하고 감사하는 태도로 이 작별의 기간 동안 모든 도움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분은 향년 84세이시며, 수도서원 63년째이셨습니다. 공로가 많은 이 수도자이자 선교사가 이제 평화 속에 안식하시기를!”

<볼프강 외슬러 아빠스와 성 오틸리엔 대수도원 공동체 올림>

 

2.“2025년 10월28일 화요일 오후2시30분경, 저희가 사랑하는 동료 수사 마르코 고벤더 수사님은 향년 77세, 잉카마나 대수도원의 수도방에서 영원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말년에 수사님은 고난을 큰 인내심으로, 때로는 미소를 띠며 하느님께서 그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기다리면서 감당했습니다. 10월28일, 하느님께서 그를 이땅에서 하늘의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신 그날입니다.”

<잉카마나 대수도원 보니파스 아빠스와 공동체 올림>

 

멋지게 그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제자답게 살다가 선종한 두 수도형제입니다. 선종하는 분들의 연세를 보면 대부분 90을 넘지 못하며 75-90세 사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산햇수보다는 남은 햇수를 저절로 계산하게 되고 삶은 진지해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놀랍게 기억하는 세분(강베로니카, 조요안나, 최리나)의 자매가 있습니다. 한분은 매달 날짜마다 산이와 죽은 이들의 명단을 가득 작성해 미사를 청합니다. 또 두분은 매달 명단을 가득채워 생미사와 연미사를 청합니다. 어떻게 그 많은 이름을 기억하는지 정성과 사랑이 놀랍습니다. 죽은 이들은 물론 산 이들과의 폭넓고 깊은 관계를 지닌 놀라운 분들로 주님 안에서 주님의 제자답게 영원한 삶을 사는 분들입니다.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죽음의 선종을 맞이하고 싶습니까? 바로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의 제자답게 시종일관 주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 살기 위해 주님은 누구에게나 세 조건을 요구하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주님 제자들에게 해당되는 요구입니다.

 

첫째는 주님 사랑을 으뜸 자리에 놓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히브리어엔 비교급이 없기에 “미워하지 않으면”은 “덜 사랑하지 않으면”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자기 가족은 물론 심지어 자기를 주님보다 덜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족 사랑을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우선 순위를 확실히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을 으뜸 자리에 놓고 주님을 일편단심 사랑하라는 것이며, 이래야 참으로 자유롭게 가족에 대한 이타적 아가페적 사랑, 집착없는 순수한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시종여일, 끝까지, 살아 있는 그날까지, 죽는 그날까지 자발적 기쁨으로 자유롭게 제 책임의 십자가, 제 운명의 십자가를 사랑하여 지고 따르는 말 그대로 영원한 현역의 삶입니다. 죽어야 제대이자 졸업인 주님의 평생전사요 평생학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구원의 관문에서 주님은 각자의 십자가를 보시고 입장시킬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도 누구의 십자가도 아닌, 빌릴 수도 살 수도 없는, 내 고유의 살아 온 십자가입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비교하거나 부러워할 것 없는 평생 살아 온 내 운명의 십자가를 뜨겁게 항구히 사랑하여 지고 가는 것이요, 주님은 힘을 주십니다. 

 

셋째, 살아 갈수록 부단히 버리는, 비우는, 내려놓는 삶입니다.

살아갈수록 모으는, 채우는, 붙잡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단히 버리고 비우고 내려 놓을 때 홀가분한 자유요 이 여력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권고는 이보다 엄중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당대 스승이신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을 따른 제자이자 사도들이 말씀 그대로 모든 소유를 버리고 무소유의 삶을 살았고, 사막의 수도승 성 안토니오 및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물론 많은 성인들이 문자 그대로 자발적 기쁨으로 타협없이 무조건적으로 모든 소유를 버리고 홀가분한 자유로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버리고 따를 수 있는지 철저히 점검해보라고 망대의 비유, 전쟁의 비유가 나온 것입니다. 결코 일시적 감상이나 풋열심으로는 곧장 도중하차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문자 그대로 실천하지 못해도 이 말씀 마음에 담아 삶의 지침으로 삼아 부단히 버리고 비우고 내려 놓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제자다운 삶을 위해 평생, 주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점차 버려가며 살아갈 때 자유로운 삶에 사랑 실천의 삶입니다. 자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완성되는 자유입니다. 사랑하라 주어지는 자유요, 바오로 사도가 정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빚을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갚을 수 없는 하느님 사랑의 빚쟁이들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제자들에게 주님이 주신 자유는 이웃을 사랑하며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라 주신 남은 날들의 기회입니다. 사랑의 빚 갚으라 주어진 남은 날들입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일뿐입니다. 

 

하루하루 사랑하라 주어지는 선물의 날들입니다. 죽으면 사랑도 못합니다. 허무에 대한 답도, 무지에 대한 답도, 무의미에 대한 답도 사랑뿐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의 사랑이 샘솟는 활력이 되어 우리 모두 주님을 잘 따르는데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시편112,5).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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