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0일 (목)
(녹)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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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착하고 성실한 삶 “하느님의 나라는, 삶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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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25-11-19 ㅣ No.186379

2025.11.19.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2마카7,1.20-31 루카19,11ㄴ-28

 

 

착하고 성실한 삶

“하느님의 나라는, 삶은 선물이자 과제다”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시편17,8)

 

“가을의 자연은

 하루하루 

 날마다

 읽어야 할 내용으로

 가득한

 살아 있는 책, 성경책입니다.”<2025.11.19>

 

이래서 가을은 기도의 계절, 공부의 계절입니다. 특히 11월 위령성월은 <삶과 죽음>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시기입니다. 무엇보다 평생교육의 하느님 공부에 매일 <미사전례문>보다 더 좋은 공부는 없습니다. 개신교 예배에 참석했던 어느 자매의 너무 “싱거웠다”라는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바로 복음의 미나의 비유가 답을 줍니다. 마태복음의 탈렐트의 비유와 흡사합니다. 비유를 통해 깨닫는 바, 하느님의 나라는, 삶은 선물이자 과제라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죽어야 끝나는 삶입니다. 끝까지 하루하루 “한결같이” 살아감이 중요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말합니다.

 

“생각하기를 포기하면 살아가는데 급급해진다.. 그러니 삶이 사납게 닥쳐올수록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우리 믿는 이들이 생각할 바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께 궁극의 믿음과 희망을 두고 늘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미나의 비유가 우리 삶에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똑같이 한번뿐이 없는 소중한 한미나의 삶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흡사 복음의 미나 비유에서 주님으로 상징되는 주인에게 한 미나씩 선물로 받은 사람들과 같습니다.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루하루 최선의 능력을 다해 착하고 성실히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예외없이 내 삶의 선물에 대해 헴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삶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마침내 때가 되자 주인이신 주님과의 결산이 시작됩니다. 죽음이 바로 주님을 만나는, 최종 결산해야 할 최후 심판의 날일 수 있습니다만, 아무도 그 마지막 시험 날짜를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미나로 열미나를 남긴 첫째 종은,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보답을 받고,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남긴 종 역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습니다. 좌우간 나름대로 역량을 힘껏 발휘하여 소정의 업적을 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는 바 업적의 양이 아니라 각자 삶의 충실도입니다. 

 

문제는 한 미나 그대로 가져온 사람입니다. 삶의 선물에 대한 과제 이행이 전무한 종으로, 그의 생각이 얼마나 오해로 왜곡되어 있는지 우리의 <하느님관>을 비춰보게 됩니다. 주인을 주님으로 바꿔 읽으면 더욱 실감나게 이해될 것입니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좋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얼마나 소심하고 어처구니 없는 오해와 착각으로 점철된 자폐적 하느님관인지요! 정말 하느님을 신뢰하고 희망하면서 긍정적 낙관적 열린 사고로 모험적 투신의 삶을 살면서 최선을 다했다면 이런 과제 불이행이나 불행한 심판은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과 전혀 상관없는 무관한 관계와 더불어 과제 이행 역시 전무했으니 얼마나 무지한지, “이 악한 종아”와 더불어 주님의 혹독한 질책과 심판이 뒤따릅니다. 주님 탓이 아니라 순전히 무지와 태만으로 스스로 자초한 자업자득, 심판의 재앙임을 깨닫습니다.

 

“저자에게서 한 미나를 빼앗아 열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 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대로 영적 현실에도 적용되는 부자는 더욱 부자되고 빈자는 더욱 빈자가 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니 나름대로 긍정적 낙관적 사고로 하느님께 신뢰와 희망을 두고 끊임없이, 한결같이, 끝까지 분투의 노력을 다하는 삶이 얼마나 결정적 중요성을 지니는 지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미나의 비유는 우리가 착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는지 또는 불충한 삶을 살았는지 거울처럼 비춰주면서 회개로 이끌어 줍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일곱 아들의 순교와 이를 목격하고 마침내 순교한 어머니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죽음은 삶의 요약이자 결론입니다. 

 

얼마나 하느님께 절대적 신뢰와 희망을 둔 어머니와 일곱형제와 일관된 순교적 삶이었는지 감동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역시 모전자전, 그 어머니의 그 아들들이었는지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특별히 그 어머니는 오래 기억될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곱 아들이 단 하루에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용감하게 견디어 냈다. 고결한 정신으로 가득 찬 그는 조상들의 언어로 아들 하나하나를 격려하였다.”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순교적 삶을 그대로 보고 배운 일곱 아들들, 참으로 선사받은 선물인생을 순교적 삶의 과제 이행에 참으로 충실했던 감동적 사람들입니다. 역시 우리 삶과 신앙의 부족과 나약함을 거울처럼 비춰주면서 우리를 회개에로 이끌어 줍니다.

 

복음의 주님 종들이 한 미나를 선물로 받앋듯이 우리 역시 날마다 똑같은 하루를 선물로 받습니다. 똑같은 하루의 선물이지만 하루가 끝났을 때 결과의 성과는 참 다양할 것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 앞에서 회개와 더불어 하루하루 날마다 받은 하루의 미나를 헴바치는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주님,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오리다.”(시편17,15).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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