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30일 (일)
(자) 대림 제1주일 너희는 준비하고 깨어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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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 수원 교구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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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11-29 ㅣ No.186565

김건태 신부님_깨어 기도하여라!

 

어제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하고 이르셨으며, 이어지는 오늘 말씀에서는 “그날이 너희에게 갑자기 덮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하고 권고하십니다.

 

‘깨어 있음’이라는 주제는 예수님이 건네주시는 모든 메시지의 기본적이며 핵심적 요소입니다. 성경에서 깨어 있도록 초대하는 말씀이나 이에 관한 비유 말씀들을 자주 접하는 이유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권고 말씀의 의미를 잘 숙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초대교회의 삶을 잘 설명해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으로 확인됩니다: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 하고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에페 6,18). 이 주제는 당연히 초대교회의 전례 안에서도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콜로 4,2).

 

 

 

이렇게 깨어 있음은 늘 기도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깨어 있다’는 ‘깨어 기도한다’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유형의 그리스도교적 깨어 있음은 외부의 침입을 감시해야 하는 보초병의 그것, 덫처럼 갑자기 덮치는 일을 방어하기 위하여 늘 반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의 그것과 다른 것입니다.

 

이 깨어 있음은, 예를 들어, 주인이 밤중에 오더라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종의 자세(마르 13,32-37),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도록 필요한 것들을 미리 갖춰 준비하고 있는 사람의 자세와 같은 것입니다. 일시도 모른 채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다림입니다. 그분이 꼭 찾아오리라는 확신과 함께,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채워드리겠다는 신념으로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다림에는 시간적인 차원을 넘어, 곧 기다림이 요구하는 시간적 격차를 넘어,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깃들어 있는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깨어 기도하여라.”하고 이르십니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은 오로지 깨어 기도함으로 가능하다는 말씀이며, 신앙인은 늘 깨어 기도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은 결국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평범한 삶, 일상적인 삶 속에서의 변함없는 신앙생활을 통해 가능하다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적인 신앙생활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보여드리기에 늘 부족했던 우리의 신앙을 언제나 기꺼이 받아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그 힘을 키우기 위해 조금 더 깨어 기도할 것을 다짐하는 가운데, 새로운 신앙의 한 해를 맞이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는, 거룩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21,34-36: “늘 깨어 기도하라.” 

 

한 해의 전례력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권고를 주신다. “너희 마음이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늘 깨어 기도하여라.”(34-36 참조).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없는 자에게 종말은 두려움이지만, 준비된 자에게는 영광과 해방의 순간이다.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깨어있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묵상해 보자. 

 

예수님께서 경계하신 세 가지는 우리의 일상 안에서 신앙을 약화하는 유혹이다.

방탕: 하느님 대신 쾌락을 추구하며 순간적 만족에 묶이는 삶이다.

만취: 육신을 넘어 영혼마저 마비시켜 주님을 향한 감각을 잃게 만드는 삶이다. 

 

일상의 근심: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세속적 걱정에 사로잡혀 마음이 무거워지는 삶을 말한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영적 무감각을 불러오며, 그 결과 마지막 때에 덫처럼 갑자기 우리를 붙잡을 수 있다고 경고하신다. 그러므로 깨어있다는 것은 단순히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는 삶을 의미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을 만날 준비가 된 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기에, 죽음은 그에게 영광의 시작일 뿐이다.”(Homilia in Matthaeum 77,2) 성 아우구스티노도 권고한다: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니, 오늘을 당신의 마지막 날처럼 살라. 그러면 언제 종말이 와도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 가운데 주님을 맞을 수 있다.”(Sermo 38,4)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나는 과연 오늘 지금 주님을 만나도 기쁘게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제는 이렇게 살아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죽는 연습: 내 뜻을 죽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매일의 작은 선택이 곧 종말의 준비이다.

기도의 삶: “늘 깨어 기도하라.”(36절)는 말씀처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느님께 드려지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종말론적 삶: 종말은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지금 내가 어떻게 사느냐 안에 이미 시작되어 있다. 

 

전례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깨어있는 삶과 끊임없는 기도의 삶으로 초대한다. 세상 근심이나 방탕, 만취로 마음을 무겁게 하지 말고, 주님을 언제라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된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두려움 없이, 오히려 기쁨과 희망으로 주님을 맞이하며,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아멘. 

 

전삼용 신부님_루카 21,34-36 

 

심판 때 그리스도 앞에 설 힘은 기도로 얻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믿음  

 

 

오늘 복음에서 종말의 긴 말씀 가운데 마지막 당부가 나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우리 대부분은 마지막 때에 하느님 앞에 설 힘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힘은 곧 그분의 뜻을 따랐느냐에 의해 생겨납니다.  

 

중동에서 남편들이 나가 돈을 보내줄 때 아내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아껴 쓰면서 자녀를 잘 키워 몇 년 만에 남편이 돌아올 때 기쁘게 김포공항에 나가는가 하면, 어떤 자매들은 남편이 돌아올 때 도망을 치거나 자살을 했습니다.

그 돈을 제비에게 다 가져다 바치고 빚까지 졌기에 남편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사랑했다고 주님 앞에 설 수 있을까요? 야곱은 장자권을 받아 구원에 이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20년 동안 많은 고생을 했음에도 감히 에사우 앞에 나설 힘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세상에서 자신이 낳은 자녀들과 모은 재물들을 먼저 선물로 보냈지만, 여전히 에사우 앞에 설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남아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천사와의 씨름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천사는 축복을 청하며 밤새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야곱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리고 그의 이름을 바꿔주었습니다.

이름을 바꾸었다는 말은 새롭게 태어났다는 말이고 새 정체성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정강이뼈가 부러졌다는 말은 더는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죽었다는 말입니다.

기도는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서는 힘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산다”라는 믿음입니다.  

 

사람 앞에 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살아 있으면 누구의 앞에도 설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랑으로만 죽는데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이들은 자아가 강해서 남들 앞에 잘 서지 못합니다.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자아가 상처받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무대 공포증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자아가 살아 있어서 잃을 것을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알게 되면 하느님의 사랑으로 부모가 죽여주지 못한 자아까지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누군가의 앞에 설 힘이 생깁니다. 나 대신 그리스도께서 나서주신다고 믿으면

사람들 앞에 설 수 있고 하느님 앞에도 설 수 있습니다.  

 

조두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소원’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소원이네 문방구, 그리고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아빠, 이들은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원이는 늦게 학교에 가게 되고 아저씨가 우산을 씌워달라는 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소원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소원이는 우산을 씌워준 것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 되어버렸고 자신에게 상처만 주는 세상과 담을 쌓습니다.

아빠가 들어와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빠도 세상에 속한 한 남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호스를 낀 옆구리로 변이 새어 나와서 그것을 닦아주기 위해 바지를 벗기려는 아빠를 거부합니다.

그런데 아빠 말고는 아이의 상처를 치유해 주어 세상과 소통하게 할 사람은 없습니다.  

 

아빠는 소원이가 냉장고 나라 코코몽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코코몽 인형 안으로 들어가 소원이와 친해지려 합니다.

소원이는 코코몽을 좋아합니다.

공장에서 일하다가도 점심시간에 소원이만 볼 수 있는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코코몽 인형 속에서 소원이를 응원합니다.

소원이는 코코몽이 보이면 그 무시무시한 학교 앞길도 힘 있게 걸을 수 있습니다.

소원이는 코코몽이 지켜주기에 학교도 갈 수 있고 남자친구들과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그것으로 만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원이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 코코몽이 아빠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소원이는 아빠를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세상도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의 희생 덕분으로 잃어버렸던 말도 되찾아 말을 하게 되고 아이들과도 이전처럼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소원이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코코몽에게 다가와 인형 얼굴을 벗기고 아빠의 땀을 닦아줍니다.

아빠는 눈물을 흘립니다.  

 

사실 우리도 같은 상황입니다.

상처받아 자아가 커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동행해주심을 믿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동행해주시는 하느님의 땀과 피를 봅니다.

그리고는 그분의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과정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나아갈수록 상처받은 나는 사라집니다. 죽는 것입니다.

마치 태양으로 다가가는 것처럼 주님께 다가갈 때 나는 타버립니다.

그렇게 나도 하느님의 인형 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에게 다가갑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시는 것이기에 타인이 나를 모욕하고 상처 주어도 크게 두렵지 않습니다.

나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주님께서 다 받아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이 믿음을 증가시켜 줍니다.

결국, 야곱이 에사우 앞에 서는 힘은 기도로 내가 죽고 에사우에게 속한 사람임을 고백할 수 있을 때 가능했습니다.

야곱은 에사우에게 일곱 번 절하며 다가갑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며 하느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과 같음을 고백합니다.

마치 마지막 만찬상에서 요한이 예수님께 그랬던 것처럼 에사우에게 안기고 그의 땅에서 살 수 있게 됩니다.  

 

소원이가 아버지의 땅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세상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처럼,

하늘나라에서도 하느님 품에서 살 수 있게 될 때 하늘나라 백성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됩니다.

형제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기도로 하느님을 사랑하여 나를 죽이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분 품에 안겨있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마지막 때에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 십자가를 거친 요한이나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숨는 일 없이 기쁘게 그분께 엎드려 그분 품으로 달려들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이 있다면 바로 그분 앞에서 설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하여 자기를 죽이는 것뿐입니다.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인정해야 합니다.

소원이가 아빠의 사랑을 인정했듯이. 이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한상우 신부님_"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루카 21,34)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방탕과 만취와

근심을

경계하십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힘이기에,

우리 마음을

지키는

실제적 지침을

일깨워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자리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길은

마음의 청결입니다. 

 

마음이 흐려지면

우리는

하느님의 뜻보다

세상의 소리에

쉽게 휩쓸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깨끗한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깨어 있음은

하느님 앞에서

지금을

진실하게 사는

태도이며,

깨어 있음은

선택이 아닌

구원을 지키는

필수적 자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은총 없이는

정화될 수 없고,

기도 없이는

깨어 있을 수 없으며,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근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흐르는 세상 속에서

방탕과 만취와 근심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도록,

오늘도 깨어 있는

마음으로

하느님을 바라보며

중심을 지키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물러지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삶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참된 신앙입니다. 

 

지난 한 해의

모든 순간을

하느님 손에 맡기며,

흘러간 시간 속에서

배운 감사와 사랑을

마음에 담고,

새해를

깨어 있는 마음으로

기쁘게

맞이합시다. 

 

이병우 신부님"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21,36) 

 

'오늘은 마지막 날!' 

 

오늘 복음(루카21,34-36)은 '깨어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연중시기의 마지막 날'이자,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는, 정확하게는 오늘 저녁부터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한 해인 '가해'가 시작됩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들려오는 짧은 복음은 이렇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21,34-36) 

 

마지막 날에 들려오는 복음이 우리를 일깨웁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인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늘 깨어 있으면, 깨어 기도하고 있으면 이제와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 안에 들게 될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늘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부활을 위해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완전하고도 극진한 십자가 사랑을 언제 어디서나 늘 기억하고,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생업을 다 제쳐놓고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겠지요. 각자의 성소(일과 생업)에 충실하고, 그 충실함 속에 기억과 머뭄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시작과 마침과 짬짬이 시간에 깨어 기도한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다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넘치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를 향해 쏟아진 십자가 사랑 안에서 한 해를 되돌아보며, 자비를 청하고, 그리고 기쁘게 새해를 맞이하도록 합시다! 

 

(~ 2역대12,1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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