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대림 제1주일 가해] |
|---|
|
[대림 제1주일 가해] 마태 24,37-44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덧 연중시기의 마지막 주간도 끝이 나고, 또 다시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입니다. ‘대림’이란 말 그대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기다린다는 것인데,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죄를 속량하시어 구원하시기 위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던 그 날, 즉 ‘성탄’을 기다립니다. 둘째는 인류 구원의 사명을 마치시고 승천하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오실 날, 즉 ‘재림’을 기다립니다. 그 날은 평소 주님 뜻을 충실히 실천하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되겠지요. 마지막 셋째는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셔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며 이끌어 주시기를, 즉 ‘하느님 나라’를 기다립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탄생으로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해야 할 소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기다림을 착실히 수행하는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희망으로 지금 이 순간을 하느님 뜻에 충실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멸망에 이르렀던 대표적인 예를 드십니다. 바로 ‘노아 시대’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는 세상의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하느님께서 노아를 통해 보여주신 심판의 표징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지요. 자애가 크시고 인내로우신 하느님은 온갖 죄악이 만연한 세상을 하루아침에 멸망시키시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기 시작하여 완성하기까지 꼬박 100여년의 시간이 흘렀으니, 그런 노아의 모습에서 종말이 임박했음을 알아보고 그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었다면 다가오는 하느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 그것도 높은 산 꼭대기에 배를 만드는 노아를 어리석다며 비웃기만 했지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홍수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단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준비가 부족하여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기회까지 놓쳐버렸으니 ‘모든 걸’ 잃은 셈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부질 없는 세상 것들에만 몰두한다면, 그로 인해 하느님 구원의 표징을 알아보지 못하고 ‘때’를 놓친다면 우리도 그들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종말’의 때가 되면 온 세상에 환난과 재앙이 닥쳐서 모든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말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지요. 물론 종말은 온 세상에 걸쳐 일어날 것이기에 그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재난에 휩쓸린 수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그 안에는 주님께서 세우신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종말의 때가 되면 주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의 가르침과 계명을 충실히 지킨 이들을 하느님 나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되겠지요. 반면 세속적인 가치와 즐거움만 쫓느라 당신 뜻을 소홀히 여긴 이들은 그토록 집착하는 세상과 함께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그분 사랑에서 나오는 그 어떤 유익도 누리지 못한 채 끝없는 절망 속으로 빠져들게 되겠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당장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존재가 되지 말고, 그분께 선택받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러기 위한 노력을 “깨어있음”으로 설명하십니다. 여기서 깨어있음이란 단순히 잠들지 않고 버티는 것이 아니지요. 이는 크게 세가지 차원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시간’의 차원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시간을 단 일 분 일 초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주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참으로 깨어있는 것이지요. 둘째는 ‘의미’의 차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의미있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기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 줄 만한 것들에 몰두하지요. 하지만 내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길은 나를 창조하신 분의 의도에 따르는 것이기에,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 그분께서 바라실 것 같은 일을 해야 참으로 깨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가치’의 차원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우리 삶에서 진정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식별하고 추구하기 위함이지요. 그래야 유한한 삶을 사는 동안 참된 기쁨과 보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최고의 가치로 여겨야 하며, 그것이 참으로 깨어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있는 방법일까요?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오늘의 제2독서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려면 방에 불을 밝게 켜두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으려면 내 영혼이 어둠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뜻을 거스르는 죄를 지으면 아담과 하와가 그랬듯 하느님 앞에 나서는 것이 죄송스럽고 두려워 그분을 피해 숨게 되지요. 하지만 그래서는 안됩니다. 어둠 속에 숨어 있으면 지금 당장은 나의 허물과 잘못들이 드러나지 않기에 내 영혼의 상태가 괜찮은 것처럼, 내가 영적으로 건강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지만, 그러는 사이 내 영혼은 오랫동안 햇볕을 못 본 화초처럼 약해지고 병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중엔 밝은 빛 속으로 나아가고 싶어도 그럴 힘조차 없게 되지요. 그러니 지금 당장 주님께서 비춰주시는 진리의 빛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뜻과 가르침에 비추어 내가 올바르게 잘 살고 있는지를 철저히 성찰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것이 하느님 뜻에 맞는 일인지, 그분께서 기뻐하실 일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금 당장은 부끄럽고 힘들 수 있지만, 귀찮고 억울할 수 있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고 삶이 되면 ‘나는 하느님 자녀답게 잘 살고 있다’는 자긍심이 생겨 내 영혼에 거룩한 품위를 더해줄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