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1일 (목)
(자)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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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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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8:54 ㅣ No.186773

세례자 요한의 겸손은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서 예수님께로 향하게 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제 소화에 대해서 같이 나누었습니다. 세레자 요한,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언자들, 요한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았던 인물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의 성인들의 삶에서 분명한 것은 겸손입니다. 자기 이탈입니다. 사랑입니다. 세례자 요한도 영적으로 매우 가난한 인물이었습니다. 자기 이탈의 소유자 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마음이 세례자 요한의 언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주님의 길을 곧게 하려고 "외치는 자의 소리"에 불과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종이나 노예가 주인의 신발 끈을 푸는 일을 했음을 감안할 때, 이는 극도의 겸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없다면 이런 언행은 나올 수 없는 인물이 요한입니다. 바리사이에게는 독사의 족속아.. 이런 말을 했던 사람이 요한입니다. 모든 것의 중심을 하느님으로 한 사람입니다. 나의 생명도 나의 안위도 나의 부와 명예도 그에게는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온전히 하느님이 전부인 사람이 요한입니다. 그리고 예언자적 삶의 종말이 항상 인간적으로는 극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듯이 폭력에 의해서 요한은 죽음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예표입니다. 세상은 영혼이 없는 곳이고 하느님 모상의 모습이 없기에 양육 강식의 논리로 죽임을 가한것입니다. 나의 어두움을 들추는데 자신의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서 요한을 죽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길은 내어 맡김의 길입니다. 요한을 묵상하면서 그도 예수님을 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살아간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과 소화의 삶에서 나를 봅니다. 보잘 것 없는 나를 온전히 보이고 당신 사랑안으로 달려가는 성인들의 삶입니다.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증언한 것은 나를 사랑하는 주님의 품으로 달려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품으로 달려가는 나를 주님은 꼭 껴안고 당신의 사랑의 입술로 나를 입 맞춤 하시는 분입니다. 그 사랑의 입맞춤에 요한도 거센 세상의 바다에서 용감히 당신을 증언 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기에 ..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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