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6일 (화)
(자)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요한이 왔을 때, 죄인들은 그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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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님_예수님의 무응답은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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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12-15 ㅣ No.186854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백성들에게 특유의 명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언제나 그러하듯 뜨거웠습니다.

길고 장황할 뿐만 아니라 도통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되는 율법 교사들과는 완전 차별화되는 가르침, 신선하고 명쾌하고 쉽고 재미있는 가르침이었기에 사람들은 말씀에 초집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심기가 뒤틀린 대사제들과 원로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란 권한을 주었소?”(마태 21, 23)

사실 대사제들과 원로들은 당시 유다 사회, 문화, 종교계를 총망라해서 최고 위치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종교를 대표하는 인물인 동시에 제한된 것이었지만 나름 탄탄한 권위와 정치력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어땠습니까? 변방 나자렛 출신이었습니다. 율법학교를 다니신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가르치는 자격증도 없었습니다. 대사제들과 원로들 입장에서 볼 때 무자격 교사, 사이비 교사가 가르치고 있으니, 당연히 따진 것입니다. 그들의 공격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답변을 회피하십니다. 노림수가 분명한 질문, 잔뜩 꼬이고 꼬인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이 질문답고 진실해야 대답할 가치가 있습니다. 질문이 사심이나 호기심으로 가득하고, 진리를 왜곡하고 호도하는 질문이라면 차라리 응답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간 예수님께서 숱하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외아들,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서의 탁월성을 직접 자신들의 두 눈으로 목격한 대사제들과 원로들이었지만, 깡그리 무시하고 곤란한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곤경으로 몰아넣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면, 더 정중하고 예의 바른 질문이어야 했습니다. 진지하고 진정성 있는 질문이어야 했습니다. 진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질문, 진정으로 예수님의 신원을 알고자 하는 질문이어야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에수님의 무응답은 정답이었습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라.”고 하신 바 있습니다. 영적 교만으로 완전히 눈이 먼 그들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신 것을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요한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마지막 대예언자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노래를 부르듯 그리스도를 증거한 사람입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예수님의 위격과 권한을 증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너무나도 당연히 백성들을 가르칠 권한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능력을 부여받으셨기에, 대사제들이나 원로보다 훨씬 큰 권한과 권위를 지니고 계십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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