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03. 말씀이 얼굴을 갖추는 시간 / 임신 10–28주 / 대림 3주)
뉘우침, 존재가 다시 형성되는 시간
#되어감 #존재의존엄 #생명존중
태아가 임신 10주에서 28주 사이에 겪는 변화는 경이롭다. 12주에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구별 가능해지고, 16주에는 성 감별이 가능해지며, 20주에는 머리카락이 생기기 시작한다. 24주에는 피부에 주름이 생기며 지방이 축적되고, 28주가 되면 뇌가 급속도로 발달하여 뇌 특유의 주름과 홈이 만들어진다.
이 모든 변화는 '형성'(formation)의 과정이다. 생명은 끊임없이 자신을 재형성하며 성숙해 간다.
오늘 복음에서 맏아들이 경험한 '뉘우침'도 바로 이러한 재형성의 과정이다. 그는 처음의 거부를 넘어서,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새롭게 형성했다.
이 뉘우침은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하느님께 열어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자라듯이,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충격적인 선언을 하신다.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이것은 단순히 사회적 지위의 역전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진정성에 관한 선언이다.
세리들과 창녀들은 자신들이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얼굴이 '완성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그래서 그들은 요한의 말씀을 들었을 때, 자신을 새롭게 형성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반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이미 '완성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고, 더 이상 성장할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예'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생명력이 없는 공허한 형식이었다.
생명의 가치는 '얼마나 완성되었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10주의 태아도, 28주의 태아도, 갓 태어난 신생아도, 노년의 어른도 모두 동등하게 존엄하다.
바리사이도, 세리도, 창녀도 모두 동등하게 존엄하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맏아들도 처음에는 '불완전한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의 가치는 '뉘우침'을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능력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도, 우리가 어떤 발달 단계에 있든, 우리의 존엄성은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열려 있고,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림절은 '말씀이 사람이 되심'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것은 추상적인 하느님의 말씀이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로 오시는 신비를 묵상하는 시간이다.
우리도 이 시간 동안 우리 안에서 '말씀이 얼굴을 갖추도록' 초대받는다. 우리의 신앙이 단순히 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과 사랑으로 형태를 갖추도록 초대받는다.
이러한 변화와 성장은 결코 혼자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대 신학자들, 특히 관계신학자들은 인격이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고 강조한다. 태아도 어머니와의 깊은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어머니의 심장박동을 듣고, 어머니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어머니의 감정 변화를 알아차린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적 인격도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맏아들이 '뉘우치고' 포도밭에 간 것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고립된 도덕적 결단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실존적 응답이었다.
작은 이의 기도
사랑의 하느님,
당신은 당신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대림절, 우리 안에서도 당신의 말씀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하소서.
태중의 생명이 날마다 성장하듯,
우리의 신앙도 날마다 자라나게 하소서.
처음에는 '싫습니다'라고 했던 맏아들이 뉘우치고 포도밭에 갔듯이,
우리도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하소서.
모든 생명이 존중받고,
모든 얼굴이 사랑받으며,
모든 존재가 축복받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우리가 작은 도구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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