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03. 말씀이 얼굴을 갖추는 시간 / 임신 10–28주 / 대림 3주)
42세대에 걸친 하느님의 인내와 기다림
#되어감 #존재의존엄 #생명존중
마태오복음은 긴 족보로 시작한다.
아브라함부터 다윗, 바빌론 유배,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까지 이어지는 42대의 이름들이다.
얼핏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이름의 나열은, 사실 하느님 구원 역사의 숨결이다.
이 족보 안에는 여인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타마르,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그리고 마리아.
이방인, 죄인, 과부, 간음의 상처를 지닌 이들까지도 구원 역사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완벽한 조건 속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나약함과 죄악, 고통의 현장 속에서 육화 되어 왔다.
칼 라너는 육화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전달하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원하신 말씀이 시간 속으로, 역사 속으로, 육체 속으로 들어오신 사건이다. 이는 물질과 영, 시간과 영원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마태오의 족보는 단순한 계보가 아니라 ‘말씀의 육화 준비 과정’이다.
42세대에 걸친 하느님의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차자”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신 예수님. 이 여정은 임신 과정과 닮아 있다.
임신 10주에서 12주, 태아의 모든 주요 장기가 형성된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분리되고, 외부 성기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 작은 생명은 이제 '배아’가 아닌 ‘태아’로 불린다.
13주에서 16주가 되면 얼굴 근육이 발달하여 미소 짓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청각 기관이 발달하여 엄마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말씀이 귀를 얻는 시간이다.
임신 20주가 되면 태동을 느끼기 시작한다. 생명의 움직임, 존재의 신호가 분명해진다. 어머니는 비로소
“내 안에 누군가가 있다”는 실재를 온몸으로 체험한다.
24주에서 28주, 눈을 뜨고 감으며 뇌파가 활발해지고 의식의 싹이 자라난다. 이제 이 생명은 자궁 밖에서도 생존 가능성을 갖추게 된다.
마리아는 42세대의 기다림을 자신의 몸 안에서 완성한다. 성모님의 9개월은 인류 역사 전체의 응축이다.
임신한 여성의 몸은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우주적 탄생의 성사다.
태아가 어머니 안에서 자라나듯,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형성된다.
우리는 모두 ‘되어가는 존재’다.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느님의 손길 아래 빚어지고 있는 존재다.
나의 삶 안에도 ‘말씀이 얼굴을 갖추고 있는 영역’이 있을 것이다.
아직 보이지 않지만 자라나고 있는 은총, 아직 들리지 않지만 울리고 있는 부르심이 있다.
우리는 내 안에서, 혹은 이웃 안에서 자라나는 생명을 돌본다. 나의 불완전함과 상처받은 역사 또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 포함될 수 있음을 믿는다.
대림 시기는 단순히 과거의 탄생을 기억하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안에서 탄생하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시간이다. 임신한 어머니가 아기를 기다리듯, 우리도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 안에서의 그분의 탄생을 능동적으로 준비한다.
42세대를 통해 당신의 아들을 준비하신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안에서 당신의 말씀이 얼굴을 갖추게 하신다. 그리고 태중의 생명처럼 우리의 믿음도 날마다 자라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은총 안에서,
마리아처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로 당신의 뜻에 “예” 하는 우리가 된다.
작은 이의 기도
기다리시는 하느님,
42세대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말씀이 몸을 입게 하신 당신을 찬미합니다.
아직 보이지 않아도
이미 자라고 있는 생명을 믿게 하시고,
완성되지 않았어도
당신의 손길 안에 있음을 신뢰하게 하소서.
마리아의 태중에서 시작된 육화가
오늘 우리 삶 안에서도 이어지게 하시고,
우리가 조급함이 아니라
기다림과 보호의 자리에서 살게 하소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서 얼굴을 갖추는 말씀 앞에
조용히 “예”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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