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8일 (목)
(자) 12월 18일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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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대림 3주간 목요일 - 혼란 속에서 시작되는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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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nansimba] 쪽지 캡슐

2025-12-17 ㅣ No.186894

 

(Week 03. 말씀이 얼굴을 갖추는 시간 / 임신 10–28주 / 대림 3주)

혼란 속에서 시작되는 구원

#되어감 #존재의존엄 #생명존중

 

오늘 복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마태오 1,18)

 

우리는 이 이야기를 흔히 ‘예수의 탄생’ 이야기로 읽는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그보다 더 깊은 자리를 보여준다.

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어떻게 하느님 앞에 서서 응답하는가 하는 문제다.

현대 신학이 말하는 ‘실존적 결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소식을 들은 요셉.

그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설명되지 않는 현실, 한순간에 무너지는 계획들.

그러나 요셉은 소란스럽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침묵 속에서 결단한다. 마리아를 가만히 돌려보내려 한다.

 

율법적으로 정당한 분노도 가능했고,

사회적 비난을 통해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단순한 선의가 아니다.

하느님 앞에서 도망치지 않겠다는, 책임 있는 응답이다.

 

요셉은 이 혼란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다.

상황을 없애려 하지도, 문제를 지워버리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 혼란 안에서 가장 인간적인 방식, 가장 존엄을 해치지 않는 길을 찾는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느님은 윤리적 고민의 바깥에서가 아니라, 그 한가운데서 당신을 드러내신다.

일상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인간의 결단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은 모든 것이 정리된 이후에 오지 않는다.

오히려 혼란 한가운데서 시작된다.

천사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 나타나지 않았다.

요셉이 가장 혼란스러운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는 바로 그 한밤중에 찾아왔다.

 

하느님은 문제를 먼저 제거하고 오시지 않는다.

그 문제 한가운데로 직접 들어오신다.

이것이 육화의 본질이다.

하느님은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지 않으신다. 당신 스스로 그 불완전한 현실이 되신다.

 

마리아의 태 안에 계신 아기도 마찬가지다. 그분은 준비된 환경을 선택하지 않으셨다.

혼란과 의문과 두려움이 함께 숨 쉬는 바로 그 현실 속에 이미 계셨다.

 

임신 10주에서 28주,

태아의 얼굴이 형성되는 이 시기는 단순한 생물학적 발달의 시간이 아니다. 눈썹이 자라고, 속눈썹이 생기고,

입술의 모양이 분명해지는 이 모든 과정은 한 존재가 자기 고유한 얼굴을 갖추어 가는 시간이다.

 

얼굴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침해할 수 없는 존엄이 드러나는 자리다.

요셉이 마주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마리아의 태 안에는 이미 한 존재가 계셨다.

설명되지 않아도, 이해되지 않아도

그 생명은 이미 거기 있었다.

 

요셉의 결단은 바로 그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운다.

 

우리는 종종 생명을 조건으로 판단한다.

계획된 임신인가, 환경이 준비되었는가, 앞으로의 삶이 보장되는가.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의 상황은 그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거기 있었고, 존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여기서 생명윤리는 묻는다. 존엄은 조건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존재 자체가 이미 존엄인가.

 

요셉은 말로 응답하지 않았다. 그는 존재로 응답했다.

“잠에서 깨어나 아내를 데려왔다.”

행동으로, 결단으로, 삶 전체로

그 생명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본래적인 신앙의 모습이다.

세상이 규정하는 나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자리 앞에 자신을 세우는 삶.

요셉은 바로 그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다.

 

이번 대림 시기, 우리도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 삶에 찾아오는 설명되지 않는 생명, 예상하지 못한 책임, 준비되지 않은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태아의 얼굴이 갖춰지는 이 시간은, 우리의 응답이 형성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우리의 혼란을 제거해 주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안으로 함께 들어오신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이 생명 앞에서, 어떻게 하느님 앞에 설 것인가.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마태오 1,20)

이 말씀은 요셉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생명 앞에 서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초대다.
 

두려움 속에서도, 혼란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이미 그 한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작은 이의 기도

 

혼란 한가운데로 들어오시는 하느님,

요셉처럼 침묵 속에서

결단하게 하소서.

 

조건이 아니라 존재로,

말이 아니라 삶으로

생명 앞에 응답하게 하소서.

 

태아의 얼굴이 갖춰지듯,

우리의 응답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갖춰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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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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