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04. 기다림 속에서 완성되는 선물 / 임신 29–40주 / 대림 4주)
'되어감'이 끝나고 '머무름'이 시작되는 시간
#머무름 #존재의존엄 #생명존중 #기다림
임신 후기인 29주에서 40주는, 어찌 보면 ‘되어감’이 마무리되고 ‘머무름’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이 시기는 태아 발달에서 분명한 질적 전환점에 해당한다.
임신 29주에 이르면 주요 장기는 대부분 형성되고, 폐와 뇌, 신경계의 기본 구조가 완성된다. 피하지방이 본격적으로 축적되면서 얇고 주름지던 피부는 점점 포동포동해진다. 이제 태아는 자궁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뚜렷해진다.
그래서 이후의 성장은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갖추어진 기능을 성숙시키고 완성해 가는 시간이다.
‘형성(forming)’의 시간이 지나고, ‘머무름 안에서의 완성’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오늘 복음(마태 1,18-24)에서 이 ‘머무름의 시간’은,
요셉이 모든 판단을 멈추고 하느님의 말씀 앞에 그대로 머무는 침묵의 시간으로 드러난다.
머무름은 행동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머무름은 ‘멈춤’에서 시작된다.
요셉은 이미 결정을 내렸었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1,19)
이때까지 요셉은 판단했고, 계산했고, 책임 있는 선택을 하려 했다.
요셉이 무언가를 하려고 움직이고 있던 이 시간은, 말하자면 ‘되어감의 시간’이었다.
이 ‘되어가는 시간’은 잘못이 아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책임 있는 길을 찾고 있었다. 다만 그는 아직 머무름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복음은 결정 직후 이렇게 말한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1,20)
바로 이 지점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개입한다.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1,20)
머무름의 시간은 꿈 안에서 열린다.
성경에서 꿈은 인간의 통제력이 가장 약해지는 자리이자, 역설적으로 하느님의 음성이 가장 또렷해지는 공간이다.
요셉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자기 판단을 멈춘 시간,
그가 꿈을 꾸고 있던 그 순간에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온다.
이 침묵의 시간이 바로 머무름의 시간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천사의 말은 머무름의 언어다.
이 말은 ‘이해하라’도 아니고, ‘결단하라’도 아니다.
존재에 대한 요청이다.
도망치지 말고,
서둘러 해결하려 들지 말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라는 초대다.
머무름은 불안을 제거한 뒤에 가능한 태도가 아니다.
머무름은 불안 속에서도 떠나지 않는 상태다.
요셉의 머무름은 순명 이전에 이미 완성된다.
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고,
자기 계획을 내려놓았으며,
이미 시작된 생명과 함께 있기로 내적으로 동의했다.
그리고 나서야,
꿈에서 깨어난 요셉은
“아내를 맞아들였다.”(1,24)
행동은, 요셉의 순명은 머무름의 결과이지, 머무름 그 자체는 아니다.
머무름의 시간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간이 아니며,
모든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는 시간도 아니다.
이미 주어진 현실 앞에 그대로 서 있는 시간이다.
앞으로 성탄을 기다리며 맞이하는 대림 4주간을, 나는 ‘머무름 안에서 완성되는 생명’의 신비로 묵상하고자 한다. 임신 주수가 더해갈수록 태아는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지만, 그것은 조급한 ‘되어감’이 아니라
하느님의 시간 안에서 펼쳐지는 ‘머무름의 완성’이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나는 요셉을 ‘무언가를 해낸 사람’이 아니라
‘떠나지 않은 사람’으로 가슴에 새긴다.
작은 이의 기도
주님,
이해하지 못해도 이미 오신 당신을
두려움 속에서도 신뢰로 맞아들이게 하소서.
기다림 속에서 자라고 있는 모든 생명을 지켜 주시고,
우리도 그 생명 앞에
사랑으로 머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조급하게 되어가려 하지 않고,
당신의 시간 안에서 완성되는 생명의 신비를
겸손히 지켜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