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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 가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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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 가해] 요한 1,1-5.9-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뻐하며 기념하는 성탄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천년 전에만 오신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꾸준히 계속해서 이 세상에 오십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작고 약한 이들, 가난하고 병들고 굶주린 이들, 슬픔과 절망 속에서 괴로움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오십니다. 외로워하는 이들 곁에 함께 있어주시기 위해, 굶주린 이들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주시기 위해,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확실한 희망을 보여주시기 위해, 걱정과 두려움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에게 참된 평화와 안식을 주시기 위해 오십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이자 의미입니다. 그것을 모른 채 세상이 주는 즐거움만 쫓으면 오시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작고 약한 이들을 찾아가기보다 밝은 조명들과 화려하게 장식된 볼거리들을 찾아다니면 오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사랑과 자비를 베풀지 않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으려고만 들면 오시는 주님을 맞아들이지 못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 이는 단지 하느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겉모습을 취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뜻하신 바를 이루실 힘과 권능을 지니신 전능하신 분께서 우리를, 약함과 부족함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 당신 안에 품으셨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께서 머무르시는 거룩하고 귀한 ‘성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내 이웃과 형제를 나 자신처럼 사랑하며 있는 그대로 내 안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느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회에서 소외된 ‘작고 약한 이’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며,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이 ‘최고’의 사랑, ‘최선’의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웃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셨는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죄인’과 다르다며 구분하고 분리하려고만 했기 때문입니다. 부족함과 약함 때문에 죄를 짓는 이들을 용서하거나 자비를 베풀지 않고 심판하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시련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며 돕기보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따지며 단죄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율법의 준수보다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강조하시는 그분이 ‘메시아’라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만삭의 임신부를 위해 자기들 잘 곳을 기꺼이 내어드린 목동들은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보았습니다. 애써 마련한 귀한 예물들로 예수님을 경배하는 마음을 드러낸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주님’으로, 온 세상을 다스리실 참된 임금으로 인정하고 맞아들였습니다.
우리에게 성탄이 그저 지인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하게 파티하는 날이 아니라, 참으로 기쁘고 의미있는 날이 되려면,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알아보고 내 안에 맞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은 분명 우리 가운데에 사십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꽁꽁 숨어 계십니다. 그렇기에 “숨은 주님 찾기”를 잘 하는 사람이, 내 이웃 안에 계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이웃과 주님 모두를 내 마음 안에, 내 삶 속에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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