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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고 안성기 배우의 마지막 삶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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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02:58 ㅣ No.187307

 

유튜브로 고 사도요한 안성기 배우님의 마지막 영결식과 여러 미담을 보며 느낀 단상입니다. 각계 각층에서 이어진 조문 행렬을 보며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한다면 그 사람의 마지막을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배우로서의 삶을 살았으면 같은 직종의 배우들로 보통 보면 많은데 안성기 배우는 보통의 경우와는 사뭇 많이 달랐습니다. 그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도 사람은 우리는 신앙인이기에 또 달리 표현해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부여받고 신앙인이 되었다면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 가지 아주 강력한 인상을 준 부분이 있습니다. 

 

막대한 자산의 대부분을 보통 보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보통인데 거의 대부분 사회에 기부로 환원한다는 사실입니다. 돈의 규모를 떠나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환원도 환원이지만 그렇게 하는 동기에 의미를 부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 아들의 생각이 역시 훌륭한 아빠의 그 아들과 같았습니다. 아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은 분명 자신의 재산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그 재산은 아빠의 재능에 대한 반대급부로 관객이 보내 주신 성원이었기에 다시 원래의 주인으로 되돌려 드려야 한다는 마인드, 이런 마인드는 나이 여부를 떠나 정말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소중한 생각입니다. 

 

단순히 재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함께 생각한 게 있습니다. 꼭 재산만 많이 있는 사람만 이런 것을 할 수 있을까요?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건 재산만 있는 게 아닐 것입니다. 재산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재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과연 그게 무엇일까 하는 진지한 묵상을 해봤습니다. 묵상 끝에 내린 결론은 '우리의 삶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표현을 거창하게 해서 그렇지 단순하게 표현하면 한 번뿐인 인생, 삶을 살면서 자신의 일생 삶 자체가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삶을 살게 된다면 신앙인으로서 이보다 더 하느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내는 게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것도 천주교를 떠나 타 종교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그보다 금상첨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아주 고상하고 위대한 족적을 세상에 남겨야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원래 위대함은 소박한 평범함 속에서도 빛을 발할 때가 있기 때문에 일상의 일에서도 감사와 그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과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을 한다면 비록 그 삶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삶을 하느님만 인정해 주시면 그 삶이 더 위대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박수갈채를 받아야만 훌륭한 삶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보다 더 훌륭한 게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입니다. 

 

설령 세상에서는 박수갈채를 받는다고 해도 하느님으로부터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런 삶은 비참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삶도 중요하지만 천상의 삶을 염원하는 신앙인이기에 영원한 천상의 삶을 살기 위해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그 삶을 준비해야 할지 한번 묵상해 보시는 시간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긴 시간처럼 남아 있는 것 같지만 막상 마지막 시간이 도래했을 때 다시 역으로 시간을 되돌려 보면 인간의 한 생애는 참으로 화살이 날라가는 시간과도 같을 정도로 아주 짧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이 짧은 시간을 자신의 영혼을 위해 쓰겠지만 아둔한 사람은 이 세상이 모든 것인 것처럼 생각하며 아무렇게나 보낼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이 될 것이냐 아니면 아둔한 사람이 될 것이냐는 지금 나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걸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둔한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불행한 영혼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하는 불행한 사람은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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