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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부끄럼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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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6-01-15 ㅣ No.187430

 

우리는 살면서 부끄럼을 경험하며 살 때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는 단순히 부끄럽기만 할 뿐이지 이게 세상에서는 죄가 되지도 않습니다.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엄밀한 의미에서는 죄는 아니지만 부끄러움을 알면 죄를 덜 짓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주 미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미묘한 차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과의 차이는 실로 신앙 안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이런 걸 한번 묵상해보는 것도 신앙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어 한번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것도 제가 한 달 동안 목욕탕 청소를 하면서 느낀 경험입니다. 다시는 하고는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한 달만 했는데도 참으로 느낀 인생의 교훈 아닌 교훈 같은 걸 경험하고 배워서 좋게 생각하면 좋은 경험을 했긴 했습니다. 

 

다른 건 다 제가 하는데 여탕 화장실 청소는 주인 아주머니께서 하십니다. 아주머니가 저를 위해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배려를 하고 싶어서 배려를 한 게 아니고 같은 여자 입장에서 여자의 치부를 남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정도는 남자라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지만 충분한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이건 아주머니의 생각이라고 제가 추측할 따름입니다. 정황상 보면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분명 남자와 여자는 성별도 다르기 때문에 어떤 특수성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도무지 아직 이해가 안 되는 그런 부분도 있습니다. 어떤 건 정말 궁금한 것도 있습니다. 그걸 안다고 해서 또 모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만 제가 만약 아내가 있다면 바로 물어보고 싶을 정도이니까요? 

 

지금 제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내용도 청소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제가 청소는 안 해도 혹시라도 점검은 다 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이 하다 보니 주인 아주머니가 못 하실 때도 있긴 합니다. 그럴 경우는 제가 합니다. 또 공식적으로 아주머니가 청소는 아니더라도 변기가 막히면 그건 부끄럽지만 부탁을 합니다.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좋게만 생각해보면 정말 유익이 되는 내용이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땐 약간은 불쾌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너번 막힌 변기를 뚫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기술 정도만 요할 정도입니다. 소위 말하는 '뚤어뻥' 같은 걸로 뚫습니다. 이게 실제 하는 방법은 간단한데 이것도 약간의 요령이 필요합니다. 그냥 무식하게 푹푹 눌러서 될 때도 있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머리를 잘 사용해야 뚫을 수 있습니다. 보통 보면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주인 아주머니께서 퇴근하실 때 변기가 막혔으니 좀 부탁한다고 요구하십니다. 그 말을 들으면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또 그것도 넓게 생각하면 청소하는 사람이 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에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 번은 분명히 주인 아주머니께서 분명 청소를 하기 때문에 아실 텐데 그냥 아무런 말도 않고 모르는 척하고 퇴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로서도 감당이 안 될 정도의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순서는 없지만 제일 먼저 파우더 룸에 있는 수건을 정리한 후에 화장실 체크를 하고 탕 청소를 하는 방식으로 청소를 합니다. 화장실을 점검을 하는데 변기가 막혀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사실 살면서 군에서 해보고 또 학생 때 하숙집에서 여자 화장실 같은 곳이나 여자 후배 자취방 같은 곳에서 여자들이 할 수 없는 그런 경우 아는 사람 집에서 해결해 준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완전 생판 모르는 사람이 한 걸 뒷수습을 한 건 처음입니다. 이걸 하면서 두 가지 배운 게 있습니다. 원래는 이걸 분리해서 언제 한번 공유를 하려고 했는데 이왕 나온김에 내용이 길고 좋은 내용이 아니라서 이번에 한꺼번에 다 설명을 하겠습니다. 

 

첫번째 배운 교훈은 일어난 건 다 똑같은 상황인데 어떤 경우는 조금 불쾌만 할 뿐이지 짜증은 나지 않는데 어떤 경우는 하면서도 짜증이 폭발할 것 같은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게 참 중요합니다. 사람이 같은 현상이 일어났는데도 말입니다. 먼저는 짜증을 낼 수가 없는 상황의 경우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다 용변을 보는 건 생리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단순 그 생리현상 때문에 일어난 것은 그렇게 불쾌하지 않습니다. 약간은 어어억 하면서 얼굴이 굳어지긴 해도 조금만 참으면 남자가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변비가 있었는지 크기도 크고 딱딱하기 때문에 막혔던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입니다. 이건 당연히 사람이면 그럴 수 있다고 인정이 되고 이해가 되기 때문에 짜증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다음 경우는 정말 화가 나긴 납니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고 짜증은 나죠. 분명히 화장실에 경고 문구가 있습니다. 변기가 막힐 수 있으니 뭐 뭐 뭐 넣지 말라고 말입니다. 

 

근데 이걸 무시하고 해서 막힌 경우는 정말 짜증이 납니다. 제가 좋은 사람이 아님에도 욕은 하지 않았습니다. 미친 미친 이 두 글자만 반복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결과가 동일해도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을 해 볼 게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결과는 동일하지만 하나는 그렇게 불쾌하지 않고 그냥 이해를 하고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는 그렇지 못 하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저도 생각처럼은 되지는 않지만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뭐냐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비단 신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은 사례를 적용하면 유익한 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뭔가 좋은 일이라든지 아니면 본당에서 봉사를 할 때도 그렇고 그런 일을 하면서도 성가시고 짜증나게 하는 신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례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이와 같은 경우를 적용해보면 좋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가능하면 그 사람 입장에서 그가 설령 이해를 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가정을 해도 그도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는가 하고 이처럼 생각을 달리 하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화가 날 일이면 화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실제 마음이 넓어야 하는 것처럼 해아 한다기보다는 그보다 더 선결과제가 그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게 이해가 될 때 대인의 면모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걸 대인처럼 생각하기엔 어렵습니다. 

 

두 번째 느끼고 배운 점이 있습니다. 묵상 제목에 대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후에 한 아주머니가 탕 출입문 입구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냥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저에게 "혹시 청소하시는 분이냐"고 해서 "제가 그렇다"고 말하니 정말 부끄럽지만 며칠 전에 화장실에 변기를 막히게 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얼굴을 정면으로 바로 보지 못하고 숙이며 정말 미안하고 죄송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저라도 그 입장이면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고 순간 그냥 누가 했는지도 모르는데 왜 며칠 지나서 그걸 자신이 했다고 밝히지 하고 약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냥 "괜찮습니다. 뭐 살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고 또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하는 그런 생리현상이라 그럴 수도 있죠" 하면서 제가 "왜 그걸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누가 했는지 모르면 그냥 넘어가시면 되시지 왜 그렇게 하세요?" 하니 다음날 변기를 뚫은 사람이 주인 아주머니가 아니고 제가 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남자라도 말 안 하면 모르긴 하지만 아주머니 마음속에는 그때 일어난 상황이 보통의 상황과도 달랐기 때문에 물론 자신이 했다는 걸 제가 모르지만 그래도 자기의 흉물을 모르는 남자가 뒷처리를 했다고 생각하니 최소한의 부끄러움 같은 것이 있었고 이게 자꾸 신경이 쓰여 안 되겠다 싶어 그냥 부끄럽지만 "미안하다"고 해야 조금 자기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제과점에 들러 고급샌드위치랑 음료를 사서 주시면서 미안함을 표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 아이고! 괜찮습니다" 하고 또 "정 그러하시다면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하고 저는 "그때 그 상황 다 잊었으니 마음 편하게 가지시고 편히 돌아가세요"라고 말씀드리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사실 이 상황을 생각하며 청소하면서 가슴 한켠에는 미소가 스며들어왔습니다. 그 아주머니께서 제가 그런 걸 처리했다는 걸 아시고 난 후에 마음속에 가지셨던 부끄러움 같은 걸 생각해보니 마음이 정말 순결하시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아주머니의 용기도 그렇고 사람이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도 마음이 순결하지 않으면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아주머니라 한편으로는 감사했습니다. 이걸 통해서 제가 묵상한 것은 우리가 고해를 하는 그 상황입니다. 비유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느낌만 이해를 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제가 마치 사제나 아니면 예수님은 아니지만 고해성사에 이 상황을 매치시켜봤습니다. 하느님도 그러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약 죄를 짓고 양심이 깨끗한 사람이면 고백을 합니다.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한편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부끄럽다고 안 하는 것과 부끄러움을 알고 그걸 무릅쓰고 하는 것과의 차이입니다. 그 아주머니께서는 부끄러움을 아셨기에 저한테 최소한의 그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야기해 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아마 이렇게 생각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이건 제 상상입니다. "청소하는 남자분이 기분 아주 안 좋았을 거" 라며 어쩌면 그게 오랜 시간 트라우마로 작용할 것 같으니 그러면 너무 안 될 것 같아 그렇게 하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냥 부끄럽다고 고백을 하지 않고 그냥 쌩까는 식으로 숨기면, 숨기긴 하지만 실제는 그게 마치 앙금처럼 가라앉아 언제 슬금슬금 올라올지 모르니 언제나 개운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차라리 그럴바에야 순간은 부끄럽지만 깨끗하게 마음을 돈독하게 먹고 고백하면 정신과 영혼에 있어서도 더 홀가분하지 않을까 하는 묵상을 해 본 것입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과의 차이는 우리가 봤을 땐 단순한 이 사실만 놓고 봤을 땐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난 먼 시점에서 역으로 되돌아보게 되면 그때 제대로 고백하는 건데 하고 후회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방법인지는 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면 그 해답은 스스로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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