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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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만 먹어가는 무명의 노인네라는 말씀이 제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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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08 ㅣ No.187544

 

 

이틀 전에 쪽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굿뉴스를 통해서입니다. 이분은 1년쯤에 서로 한 번 쪽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고 이번에 또 한 번 있었습니다. 쪽지를 어떻게 무슨 사연으로 주고받았는지는 개인 프라이버시라 말씀을 드릴 수 없음을 양해바랍니다. 자매님이시다는 것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받은 쪽지는 1년전에 받은 쪽지도 감동이었지만 이번에 받은 쪽지는 감동과 함께 제 가슴을 울립니다. 가슴을 울린다는 게 뭔가 아픔을 주고 해서 일어나는 그런 울음이 아니라 그 감동이 찐해서 그 감동에 취해 주체를 할 수 없을 만큼 떨렸기 때문입니다. 제 가슴에 아직도 그 여진이 계속 다가오고 있습니다. 당분간 계속 될 것 같습니다. 

 

만약 그분이 이 글을 보시면 약간은 당황스러워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1년 전 쪽지도 굿뉴스에서 활동하면서 받은 쪽지 중 가장 긴 글이었는데 이번에는 더 길었습니다. 저는 이분의 나이를 정확하게 잘 몰랐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상상을 한 나이는 평범한 주부 정도의 분으로 상상만 했습니다. 이번에는 숫자로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무명인 노인네라고 하는 표현을 쪽지에서 언급을 하신 것입니다. 조금 전에는 이 쪽지를 복사해서 제 개인 카톡으로 보내 애플워치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아이폰에서도 볼 수도 있지만 생각나면 언제 어디서든 보고 싶을 때 보려고요. 그 내용은 공개를 할 수 없지만 그 내용을 통해 제가 받은 감동의 물결은 나누고 싶습니다. 

 

그분이 이걸 보시면 왜 이게 감동이지 하고 의문이 드실 겁니다. 저는 먼저 이분이 아주 겸손하시다는 걸 글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억지로 가식으로 겸손하는 척하는 그런 위선적인 겸손이 전혀 없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문장에서 묻어나는 고결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어도 이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걸 들어주시지 않으셨는데 그렇게 하신 것도 겸손 때문에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시면서 사용하시는 표현은 마치 문학소녀와 같은 감성으로 절대자이신 하느님을 달리 표현하셨습니다. 

 

문학적으로 표현을 하셨던 것입니다. 단 한 줄로 표현하면 글에서 겸손과 영혼이 순결하신 것 같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런 느낌에다가 '나이만 먹어가는 무명의 노인네'라는 그 표현이 제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울컥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왜 이게 제 가슴을 울리는지 그 이유를 나누고 싶습니다. 사실 여기서 노인네라고 하는 표현만 놓고 보면 자매님의 연세를 정확하게 가늠하기 힘들긴 합니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많이 젊으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순히 노인이라고 하는 표현에서 연세만 들어간다고 해 쓸쓸한 느낌이라 제 마음이 먹먹한 게 아닙니다. 무명이라는 단어를 통해 본인을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 없이 이 자체로 자매님을 낮추신 것이고 여기다가 나이만 먹어간다고 하신 표현에서도 저는 이분의 마음이 무척 겸손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왤까요? 이분은 글에서 이렇게 표현하긴 했지만 제가 느끼는 감성은 이렇습니다. 

 

자신을 더더욱 낮추어 겸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마저도 겸손으로 낮추신 것입니다. 제가 왜 이걸 겸손이고 겸양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짐작이 되시는지요? 쪽지에서 나타난 전체 글 맥락과 표현을 보면 단순히 나이만 먹어가는 무명의 노인네의 글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표현이 담백하면서 격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표현했다는 게 감동이었습니다. 저도 사람은 또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어떤 경우에는 겸손하지 못할 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교만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단순한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앞으로 더더욱 낮아지려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분의 쪽지를 여러 번 생각날 때마다 보면서 저도 이분처럼 겸손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마음에 간절한 소망을 품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하느님께 기도를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하느님, 쪽지를 통해 존함만 알고 있습니다. 세례명은 잘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름도 아시고 세례명도 아시지만 제가 자매님을 기도 중에 세례명 없이 기도를 올려드려도 그 자매님이 이 자매님이신 줄 꼭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요 하느님, 이름이 동명이인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마음속에 생각하는 자매님이 이 자매님이라는 걸 꼭 기억해 주세요. 하느님." 국어적으로는 압존법 때문에 자매라고 해야 하는데 이 경우는 그 대상이 하느님이시고 또 특수한 경우라 이렇게 표현함도 양해바랍니다. 

 

하느님, 저도 이 자매님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은총과 지혜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오늘 오전에 올린 글이 있습니다. 그 글을 올리고 그 자매님의 영혼을 위해 연도를 하고 왔고 내일은 장례미사를 참례하고 올 생각입니다. 오늘 글에서도 유사한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단순히 신앙생활이 종교생활이 되면 안 될 것입니다. 종교생활을 해서는 절대 영혼이 깨끗해질 수 없습니다. 종교생활이 아닌 신앙생활이 되어야 영혼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앙생활은 단순한 신앙생활이 아니고 온전한 신앙으로 생활한 그런 신앙생활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가기 위해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도 가곤 합니다. 넘어진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일어나 달려갑시다. 또 넘어지면 또 일어나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의 영혼은 아름다운 영혼으로 변화가 될 것입니다. 이걸 희망하고 같이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에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영혼으로 만나 행복하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복락을 함께 누렸으면 하는 희망 간절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 추가하겠습니다. 전하고자 하는 내용 중 빠진 내용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분은 제가 뵙지는 않았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고결한 영혼을 가지신 분 같습니다. 근데 자매님은 아마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자체가 이미 큰 교만이라고 생각하셔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건 어떤 사실 팩트를 근거로 해서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니지만 쪽지로 주고받은 내용에 나타난 정황과 표현을 유추해 짐작해봤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생활묵상글을 작성하면서 문득 묵상이 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이라는 건 경건한 신앙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이게 고결하다고 표현하는 건 어색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례를 통해 보면 사람이 겸손하면 그것도 그냥 겸손이 아니고 가장된 겸손은 더더욱 아니고 진정으로 지극히 겸손이 우러나는 사람은 그 영혼이 수정처럼 맑고 고결한 영혼으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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