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1월 26일 수원 교구청 묵상 |
|---|
|
김건태 신부님_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는 이방인, 곧 그리스인으로서 사도 바오로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다음, 바오로의 선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가운데, 때로는 바오로를 대신하여 이방인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던 분들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우리의 형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하느님의 협력자”(1테살 3,2), “나의 협력자 티모테오”(로마 16,21),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나의 성실한 아들”(1코린 4,17)이라 부를 만큼, 제자 관계를 넘어 절친한 친구이자 협력자 그리고 아들 같은 존재로 여깁니다. 또한 티토에게는 “내 동지이며 여러분을 위한 나의 협력자”(2코린 8,23), “같은 믿음에 따라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토”(티토 1,4)라고 칭하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냅니다.
한편, 티모테오는 에페소 교회를, 티토는 크레타 교회를 맡아 돌보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사도 바오로가 이들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는 사목자들과 신자들에게 지침이 되는 많은 권고를 담고 있어 사목서간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을 일차적으로 시험 파견하시며, 일종의 파견사와 같은 말씀을 건네십니다.
첫째,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을 보내주십사고 청하여라.” 하고 이르십니다. 준비 작업은 청함, 곧 기도라는 말씀입니다. 복음 선포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기도가 앞서야 한다는 대원칙 천명입니다. 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우리 신앙인들의 현실입니다.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청한다는 것은, 청할 만큼 나는 부족한 존재이며, 이 청을 들어주실 만큼 능력이 있는 분에 대한 고백, 나아가 신앙고백이 될 것입니다. 다른 것에는 부족함이 있어도, 기도만큼은 철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둘째, 기도와 함께 우리가 늘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할 덕목은 겸손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난 이래, 지금까지 부족하지만, 정성껏 주님의 말씀을 뿌리고, 잡초를 제거하고, 병충해 방지를 위해 애쓰고 등등 일해오면서, 그래도 추수의 기쁨만큼은 주님께 드려야지 생각해 왔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그저 추수할 일꾼을 필요로 하신답니다. 땀 흘려 일해 왔다 생각했는데, 그것은 겨우 추수의 기쁨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주님이 다 차려놓으신 잔치상에서, 기쁨만 누리면 된다는 의식의 전환입니다. 그러니 겸손의 몸짓, 감사의 마음으로 화답할 일만 남아 있는 우리들입니다.
끝으로, 형제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일, 그것이 바로 겸손한 모습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길입니다. ‘평화’, ‘샬롬’하면, 하나의 인사말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 평화가 되돌아온다는 가르침을 보면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게 분명합니다. 사실 유다인들은 행복이라는 단어가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흔히 평화라는 단어로 행복을 표현하기 일쑤였습니다. 성경에서 평화는 이처럼 남을 행복하게, 남을 편하게 해주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은 행복을 전하면서 우리 자신 행복해질 것이며, 남을 편하게 해주면서 우리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삶이 될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바로 거기에 구원이 있고, 바로 거기에서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축일을 맞이해서, 우리 모두 기도에 더욱 정성을 다하고,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 가운데, 서로에게 평화를 빌어주는 사람,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복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0,1-9: “수확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1. 충실한 두 제자, 티모테오와 티토
오늘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두 협력자, 티모테오와 티토를 기념한다. 티모테오는 바오로가 “믿음 안에서 나의 참된 아들”(1티모 1,2)이라고 부를 만큼 특별한 애정을 받았다.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바오로에게서 중요한 사명을 맡았고, 후에 에페소의 주교로 봉사하며 교회를 돌보았다. 티토는 이방인 출신으로서, 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동행하여 이방인도 할례 없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진리를 증언했다(갈라 2,3 참조). 그는 후에 크레타의 주교가 되어 교회를 굳건히 세우는 목자로 살았다. 이 두 제자의 삶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교회의 기초를 세운 사도적 협력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2. 복음: 짝을 이루어 파견된 제자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파견하셨다. 이는 단순한 실용적 배치가 아니라, 공동체적 복음 선포의 원리를 보여준다. 성 그레고리오는 말한다. “둘씩 보내신 것은, 사랑을 떠나서는 복음을 전할 수 없음을 보여주신 것이다.”(Hom. in Evang. 17) 복음을 전하는 이는 자기 능력이나 성과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의지하여 공동체 안에서 사랑으로 협력해야 한다.
3. 일꾼의 부족과 소명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2절) 이 말씀은 당시에도 현실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교회의 현실이다. 일꾼은 단순히 성직자나 수도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꾼은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의 구원만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다.”(In Matthæum Homiliæ 32) 곧,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신자는 추수 밭의 일꾼입니다. 우리는 세례로 그 사명을 받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말씀을 증거해야 한다.
4. 교회의 가르침
교리서 863항은 이렇게 가르친다. “온 교회가 본성상 선교적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분을 증거하고 그분의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티모테오와 티토의 삶은 바로 이 선교적 본성을 충실히 살아낸 모범이다. 교회는 그들의 기념일을 통하여 우리가 모두 복음 전파의 공동 책임을 되새기도록 초대한다.
5. 오늘의 적용
먼저, 우리 공동체 안에서 더 많은 일꾼이 나오도록 기도해야 한다. 성직자, 수도자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신앙을 증언하는 평신도의 일꾼들이 필요하다.
둘째, 우리 자신이 먼저 투신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티모테오와 티토처럼 복음을 위해 젊음을, 삶을, 온 마음을 봉헌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셋째, 사랑으로 협력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짝지어 파견된 제자들처럼 서로 보완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이 필요하다.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의 삶은 “추수밭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복음 선포의 사명을 기쁨과 사랑으로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이병우 신부님_"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루카10,2ㄱ)
'부족함의 의미!'
오늘 복음(루카10,1-9)은 '예수님께서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시는 말씀', 곧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10,2)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돈 주머니 등 아무것도 지니지 마라.'(루카10,4)는 말씀과 '어떤 집에 들어가면 먼저 평화의 인사를 하라.'(루카10,5)는 말씀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전하라.'(루카10,9)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족한 일꾼'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같은 말씀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도 전해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안에 어떤 일꾼이 부족하다는 말씀인가?
이 '부족함의 의미'가 단순히 숫자의 많고 적음의 의미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성직자들의 수가 적고, 수도자와 선교사들의 수가 적다는 의미로만 들려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자녀답게, 신자답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적다.'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복음화의 첫 단계'는 '내가 먼저 복음화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주위에 우리가 주님께로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바로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을 모르는 이들, 알면서도 냉담 중에 있는 이들, 죄로 인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이들'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구원에서 배제되기를 원하는, 영원한 벌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먼저 복음이 되고, 그리고 말과 행동으로 너를 복음으로 인도하는 참일꾼이 됩시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2티모1,6ㄴ) (~ 1마카5,39)
송영진 신부님_<신앙인의 삶 자체가 신앙의 증언이고 복음 선포입니다.>
“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1-9)”
1)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선교활동을 할 때 지켜야 할
‘행동 지침’이면서, 동시에 모든 신앙인이 신앙생활을
할 때 지켜야 할 ‘생활 지침’입니다.
신앙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삶’이 곧 신앙의 증언이 되고, 복음 선포가 됩니다.
만일에 ‘말’로만 복음을 선포하고, ‘삶’이 신앙인답지
않다면, 그 복음 선포는 ‘거짓 증언’이 되어버립니다.
<복음 자체는 진리이지만, 전하는 사람의 거짓된 삶 때문에
‘듣는 사람’이 복음을 거짓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상태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것은, 복음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말’보다 ‘삶’이 먼저입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이 말씀에서 ‘착한 행실’은 ‘신앙인다운 삶’을 뜻합니다.>
2)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라는
선포는, “하느님 나라가(종말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라는 선포입니다.
그리고 이 선포는 ‘종말의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선포는 “늦기 전에, 지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라는 선포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날이 다가오는데, 아직도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라는 뜻이고,
안타까워하시는 당신의 심정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라는 말씀은, “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사고 하느님께 기도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선교활동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라는 가르침이기도 하고, 선교활동은
‘기도하면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도 기도하면서 하는 생활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말로만 기도하면 안 되고, 우선 먼저 신앙인답게,
하느님의 일꾼답게 생활하려는 노력부터 해야 합니다.>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라는 말씀은, “선교활동은 양들이
이리 떼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라는 뜻인데,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리 떼를 회개시켜서
양들로 변화시키려고 갑니다.
<‘양답게’ 살고 있는 사람만이 이리 떼를 변화시킵니다.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2,12).”
이 말씀의 ‘착한 생실’도 ‘신앙인다운 삶’을 뜻합니다.>
4)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가라는 말씀은,
세속의 재물에 의지하지 말고,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께만 의지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에, 그는 선교활동을 하면서
신자들의 후원금으로 생활한 것이 아니라, 직접 노동을
해서 생계비를 마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사도 18,1-4).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2-13).”
<선교 여행 동안 비천하게 지낼 때도 있었고, 풍족하게
지낼 때도 있었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
즉 그런 것을 초월해서 살았던 것이
바오로 사도의 삶이었습니다.>
5)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의식주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라.” 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태 6,25-34).
신앙인은 걱정을 믿음으로,
또 ‘기도’로 극복하는 사람입니다(필리 4,6-7).
걱정거리에 사로잡혀서 걱정만 하는 것은
믿음의 반대쪽에 있는 모습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