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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6.0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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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화요일 구석기 시대 조각상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보면, 당시에는 뚱뚱한 몸매가 출산과 풍요의 상징이자 미의 기준이었습니다. 먹거리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원시시대에는 수렵 채취를 위해 산과 들로 다니느라 살이 찔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세까지도 그러했습니다. 하루 종일 노동해야만 생계를 겨우 유지할 수 있었던 평민과 달리, 일하지 않고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귀족층, 즉 가진 자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뚱뚱한 몸매는 곧 부의 상징이었고, 자연스레 미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다를까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1990년 초까지만 해도 통통한 여성에게 ‘부잣집 맏며느릿감’ 이라는 덕담을 건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현재는 걸 그룹과 같은 마른 몸매를 선호합니다. 미의 기준은 이렇게 바뀝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아름다움은 과연 영원할까요? 이 ‘아름다움’ 역시 시대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게 될 것입니다.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를 따르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어떠해야 할까요? 주님을 따른다고 말로만 외치면서, 행실로는 전혀 변화가 없다면 어떨까요? 진심으로 주님을 따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이제 세상의 가치보다 주님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인물들이 위치한 자리입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은 ‘밖에 서서’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에서 ‘밖’은 단순히 물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과 신비를 깨닫지 못하는 영적인 모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 둘레에 군중이 앉아 있습니다. 즉, ‘안’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죄인이거나 부족한 사람들이라 해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분의 권위 아래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르 3,33.35) 구원은 혈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며 말씀을 듣는 곳에서 온다는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이는 혈연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혈연보다 더 상위의 가치를 세우신 것입니다. 가장 큰 가치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고 있나요? ♡오늘의 명언♡ 성당은 선택받은 몇 사람만을 위한 작은 기도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집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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