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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8일 (수)
(백)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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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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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1-27 ㅣ No.187654

뉴스에서 환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저는 환율을 실감하며 체험했던 적이 있습니다. 1997IMF 때입니다. 당시 환율은 1달러에 600원가량 했습니다. 그런데 외환위기의 파도를 맞으면서 환율이 2,000원까지 급등했습니다. 당시 저는 소량의 달러가 있었습니다. 환전해서 부모님 전세금 마련에 사용했습니다. 2019년부터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급여를 달러로 받고 있습니다. 환율과 크게 상관없이 지냈습니다. 작년 10월에 한국으로 휴가 갔을 때 환전해서 사용했습니다. 예전에 환율이 오르면 수출하는 기업은 도움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가격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수입하는 기업은 어려움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수입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환율은 한두 가지 원인으로 정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축 통화 국가인 미국의 경제 상황이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전쟁도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국가의 정책과 투명도도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는 외환위기와 같은 어려움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숫자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주식 지수, 금리, 물가, 그리고 환율. 뉴스를 켜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숫자들입니다. 그중에서도 환율은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가장 예민하게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환율이 오른다, 떨어진다는 말 속에는 단순한 경제 정보가 아니라 사람들의 두려움, 기대, 불안, 그리고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환율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환율을 완전히 통제한 적은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정부와 치밀한 정책이 있어도, 전쟁, 금리 변화, 국제 정세, 자본 이동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환율은 늘 먼저 흔들립니다. 그래서 환율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율이 급변할 때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찾고, 더 빠른 판단을 요구합니다. “지금 달러를 사야 할까?”, “이 선택이 손해는 아닐까?” 불안은 계산을 부르고, 계산은 또 다른 불안을 낳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분명히 말해 줍니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 계산을 늘릴수록, 불안은 오히려 더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만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하루하루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하느님을 원망합니다. “이집트에서는 고기 가마 옆에 앉아 있었는데, 이 광야에서 굶어 죽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만나를 내려 주시지만, 하루치 이상을 모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불안 때문에 만나를 쌓아 두려다 썩은 냄새를 맡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나의 양이 아니라, 불안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입니다. 광야의 불안은 계산으로 해결되지 않았고, 신뢰를 배울 때에만 비로소 견딜 수 있었습니다. 환율이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정책이 잘못되었다.” “누가 책임져야 한다.” 물론 정책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환율을 단일한 정책이나 한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통제의 환상에 빠지게 됩니다.

 

축의 시대(Axial Age)에 인류의 현인들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삶으로 나갈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들의 희망은 조로아스터교, 불교, 유교, 유대교, 그리스 철학으로 열매 맺었습니다. 축의 시대에 나타난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황금률(黃金律)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건 남에게도 행하지 않는 겁니다.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더 행복하다고 합니다.’ 인류의 문명, 문화, 역사, 경제, 예술은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의 씨가 열매 맺은 겁니다. 그러나 하루살이가 내일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메뚜기가 내년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영원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 욕망과 두려움은 인류를 추락하게 하였습니다. 전쟁, 폭력, 살인, 굶주림은 인류의 희망이 열매 맺지 못하게 하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이 뿌리고 싶은 씨는 무엇일까요? 어떤 열매를 원할까요? 재물, 성공, 명예, 권력은 아닌지요?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얻고자 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 나라는 너무 멀리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도 아직은 아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욕망이라는 바벨탑을 향해 올라가지만, 그곳에서는 희망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뿌리시는 씨는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말씀, 진리, 영원한 생명, 하느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씨를 뿌리셨고, 제자들과 함께 그 씨가 열매 맺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보아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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