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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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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1-27 ㅣ No.187655

성당 활동하면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 여기가 모양은 주님의 성전인데 그 안에 모여 있는 분들은 일반 사회인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당 뿐만 아니라 재속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그 안으로 들어 가보면 사회적인 논리, 잘나간다 혹은 회사 사장이다. 혹은 대기업 임원, 나름 명망가들이 성당의 요직을 맡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S대학교 출신의 동물 병원 의사 선생님이 계신데 성당에서 활동을 특별히 헌신적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분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입니다.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시나? 아니면 자비로운가? 오직 그분이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그분의 학력입니다. 지금의 사회적인 위치입니다. 저 있는 재속회 회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짝궁이 가정적으로 좀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둘이 만나면 넘 마음이 아파요..혼자서 저 십자가 어찌 질머지고 갈지 걱정입니다. 저의 짝궁 되시는 분도 매번 만나면 어께가 쭉 쳐져있어요. 힘이 없어요. 처음 그분을 만났을때는 그분의 외형만을 보아서는 나름 사회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고 나름 돈도 잘 버실것 같았습니다. "~사" 출신이셔서요. 그런데 어찌 같이 생활하면서 나름 그분의 무거운 십자가를 보았고 넘 가슴이 아팠어요. 혼자 감당하기에 넘 무거워 보였고 누군가는 같이 대화해줄 상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그런데 재속회 회장님을 성당 미사에서 잠시 뵙고 제 동기가 걱정되서 한마디 하는데 그 회장님의 말씀은 의외의 대답이 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사" 인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와 같이 재속회 입회시 여려분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다 나가고 둘만 남았습니다. 들어 올 때 사람들에 대해서도 회장님의 의견은 Name value를 신앙으로 생각하시는 것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가끔 같이 입회한 사람들의 근황을 들어보면 나름 영적인 여정에서 힘들었던 것 혹은 즐거웠던 것을 솔직히 말해주고 서로 덕담을 이야기 해줍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느끼는 것은 사회적인 Name value는 사회적인 Name Value입니다. 신앙은 성화의 여정입니다. 사람과 사람 안에서 관계성이 사회적인 평판도, 혹은 부자, 학식있는 사람, 의사, 판사, 등과 같은 평판에 의해서 움직이는 곳이 성전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성화의 여정이고 서로 하느님의 따뜻한 온기를 나누기 위한 곳이 성전입니다. 오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공적업무를 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 사목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활동하시는 영역 밖에서 사람들이 주님에게 주님의 식구들이 와서 찾는다고 전합니다. 그 순간 주님은 누가 나의 형제요 나의 식구란 말인가?

  

이것은 하느님 앞에서 보편성에 대한 말씀이십니다. 한분이신 하느님을 중심으로 누구나 같이 형제요 자매라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성모님이 특별히 추대 받는 모습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모님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분을 우선하신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관점에서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십니다. 성당 안이나 밖이나 우리는 같은 하느님의 창조물입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형제애와 자매애를 나누는 것이 보편타당한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세상 안에서 동일하게 이루어 지는 것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여정 안에서는 중심은 하느님에게로 두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적인 형제애와 자매애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나면서 세상사와 다른 길로 인해서 많은 고난이 수반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고통으로 생각하고 피해 간다면 그것은 주님을 배반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통과 아픔은 필연적으로 오지만 그 여정 안에서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 안에서 주님 닮은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확실한 목표 의식은 내가 성화되어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나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친족, 가족 중심, 사회 중심적인 것이 나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적인 세상을 주님이 이루시는데 저가 도구로 쓰여짐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성령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화가 있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모님은 고통의 끝판왕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투정같은 것은 없으신 분이셨고 당신이 하늘로 부름 받아서 올라가실떄까지 세상의 고통 중에 고통의 끝까지 가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통의 King 이시라면 성모님은 그 고통을 품에 안고 사신 분입니다. 복음의 말씀 붙잡고 묵묵히 걸어가신 분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 지시라 믿으신 분입니다. 온전한 내어 맡김의 정석과 같은 분이 성모님입니다. 오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은 우리 인간의 생각의 결이 다른분입니다. 하느님 영광에 온전히 내어 맡기신 분입니다. 성모님의 영성을 우리도 본 받고 가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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