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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금)
(녹)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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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8일 수원 교구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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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1-28 ㅣ No.187680

왕곡 성당 조욱현 신부님_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학자 기념일

 

복음: 마르 4,1-20: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3절). 이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 모든 이에게 차별 없이 선포된다는 것이다. 주님은 땅을 가리지 않으신다. 길이든 돌밭이든 가시덤불이든 좋은 땅이든, 그분은 모두에게 씨를 뿌리신다. 이는 하느님께서 모든 이가 구원되기를 바라신다는 보편적 구원 의지를 보여준다(1티모 2,4 참조).

 

씨앗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고, 땅은 우리의 마음이다. 말씀은 항상 같은데, 결과는 다르다. 문제는 말씀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내적 상태이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무관심과 닫힌 마음 때문에 뿌리 내리지 못한다. 돌밭은 깊이가 없고, 시련이 오면 곧 말라버린다. 가시덤불은 세속적 욕망과 재물의 유혹, 근심 걱정이 말씀의 숨을 막아 버린다. 그러나 좋은 땅은 말씀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비유를 이렇게 해설한다. “씨는 같으나 밭이 같지 않다. 우리의 영혼이 씨앗을 거부하거나 수용하는 것이다.”(Enarrationes in Psalmos 44,25) 결국 구원의 열매는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비유를 해석하면서, “마음의 밭을 갈아엎어라. 돌을 치우고, 가시덤불을 뽑아내라. 땅이 바뀌면 수확도 달라진다.”고 권고한다(Homiliae in Matthaeum 44). 교부들은 한결같이, 말씀을 듣는 태도와 준비가 열매의 차이를 결정한다고 가르쳤다.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간직하고 실천하신 분으로, 가장 비옥한 땅의 표본이시다(루카 2,19). 그분의 ‘예, fiat’은 말씀의 씨앗이 잉태되어 세상의 구원이 된 사건이었다. 우리 역시 말씀을 환영하는 열린 마음을 지니면, 그분처럼 말씀을 세상에 열매 맺게 할 수 있다.

 

좋은 땅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갈아엎어야 한다. 돌을 골라내야 하고, 가시를 뽑아야 한다. 그것은 곧 회개와 정화, 끊임없는 기도와 성사 생활,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뜻한다. 열매가 삼십 배, 예순 배, 백 배로 다르게 맺히는 것도 우리의 준비와 노력에 달려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은총을 주시지만, 우리가 열어드린 만큼, 비옥하게 만든 만큼, 열매는 달라질 것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 마음의 밭을 돌아보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말씀의 씨앗을 뿌리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마음 밭을 잘 가꾸어, 그 말씀이 뿌리내리고 자라 열매 맺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성모님처럼 말씀을 간직하고 실천하며, 우리 삶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풍성한 결실이 되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이병우 신부님_제목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1.28)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마르4,3)

 

'말씀의 씨가 떨어지는 내 마음의 밭은 어떤가?'

 

오늘 복음(마르4,1-20)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이 비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119,105)

"당신은 저의 피난처, 저의 방패 저는 당신 말씀에 희망을 둡니다."(시편119,114)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5,12)

 

이처럼 하느님의 자녀들은 말씀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얻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힘들었을 때에 말씀을 꽉 잡았습니다.

그렇게 그때부터 말씀을 필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신구약성경을 세 번째 필사 중인데, 현재는 마카베오기 상권의 말씀을 필사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5시에 복음묵상글을 전송하고 난 후 말씀을 필사합니다. 그리고 짬짬이 시간을 이용해 필사합니다.

 

하느님 말씀의 씨가 매일 뿌려지고 있습니다.

말씀의 씨가 뿌려지는 내 마음의 밭은 지금 어떠한 모습인가?

 

사탄에 말씀을 빼앗기는 '길'의 모습인가?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바로 넘어지는 '돌밭'의 모습인가?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가지 욕심이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덤불'의 모습인가?

아니면 말씀을 듣고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의 모습인가?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복음환호송)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가장 완전하게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씀을 가까이 합시다!

복음을 가까이 합시다!

그래서 부활합시다!

 

(~ 1마카6,27)

 

이병우 루카 신부

 

 

김건태 신부님_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복음서는 예수님 시대에 이어 제자들을 포함한 목격 증인들의 시대가 지나고 난 다음, 예수님의 목격 증인들의 증언을 기초로 집필된 작품입니다. 따라서 초기 교회가 체험해야 했던 여러 힘든 상황들이 복음서의 배경을 이룰 뿐만 아니라, 복음 저자들이 이러한 상황 극복을 위해 애쓰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마르코가 전하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역시 초대 교회가 극복해야 했던 버거운 현실로부터 영향을 받아 기록된 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선 말씀을 뿌리는 선교활동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가 신통치 못했음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고, 다음 ‘말씀’이라는 용어의 의미 파악이 절실했습니다.

 

마르코는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 다가간다.” 바깥사람들은 마음을 바꾸어 회개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언뜻 보기에, 이 단정적 말씀은 몇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은 바깥사람들을 단죄하고자 하시는가? 왜 그분은 모든 이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시지 않는가? 사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예수님이 직접 그 시대의 청중을 위해서 하신 말씀으로 해석한다면, 우리의 이의제기는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대가 아니라, 초기 교회의 삶의 틀 속에 이 본문을 자리하게 한다면, 앞선 질문들은 정당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마르코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고 난 다음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청중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으나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분께 대한 믿음 또한 갖추지 못했습니다. 마르코는 이렇게 하나의 탁월한 문학 작업을 통하여 현재를, 다시 말해서 유다 백성이 여전히 교회의 선포를 거부하고 있는 초기 교회의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이미 그렇게 예고하고 그렇게 원하시기나 했던 듯이 말입니다.

 

결국 마르코는 오늘 비유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신비스러운 계획이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인간이 구원의 표징을 읽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함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근접할 수 없는 곳에 감춰져 있거나 봉쇄된 메시지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읽고 이해해야 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신앙을 튼실하게 일구어나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길바닥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이 아니라,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으로 변화시켜 나아가야겠다는 다짐과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출 수 있도록, 사랑과 인내로 양성하신 사도들을 신앙의 모범으로 보내주시고, 이들을 기초 삼아 세우신 교회 안에 우리를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듣는 신앙인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이고 그들의 바람에 좀 더 눈을 여는 가운데, 신앙인들은 누구보다도 편견 없이 잘 보고 잘 듣는 사람들임을 드러내는, 자랑스러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송영진 신부님_<‘나쁜 땅’도 노력하면 ‘좋은 땅’이 될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마르 4,14-20).”

 

 

 

1) 이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만, 즉 신앙인들에게만 하신 말씀이고,

 

신앙생활의 최종 결과에 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지금 ‘좋은 땅’이라고 해도, 즉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더라도 ‘자만심’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 말씀이고,

 

동시에 지금 ‘나쁜 땅’이라고 해도, 즉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끝까지’ 가 봐야 압니다.

 

평생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꺾이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2)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신앙인들이 실제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나타내는 비유인데, 그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 즉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원인을 알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들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해결 방법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와서 말씀을 빼앗아 가면, 즉 사탄의 유혹이

 

다가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는 방법은 ‘기도’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르 9,29).

 

<마귀를 쫓아내는 방법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인간을 유혹할 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를 숨기고

 

다른 모습으로 위장해서 유혹합니다(2코린 11,14ㄴ-15).

 

마귀의 유혹은, 식구들을 통해서도 오고,

 

친한 친구들을 통해서도 오고,

 

평소에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통해서도 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또는 사랑으로 하는 충고와 조언’의

 

모습으로 올 때가 많습니다.

 

그 진심과 사랑이 거짓이든 진짜든 간에, 그것 때문에

 

금방 무장해제가 되고, 그래서 마귀의 유혹은

 

대단히 강력하고 위험한 것이 됩니다.

 

또 마귀의 유혹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그 유혹에 넘어갈 때가 많기 때문에,

 

평소에 꾸준히 기도하면서 저항력을 키워야 합니다.

 

 

 

3)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 사이에 있었던 일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는 말씀을

 

하셨을 때,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려는 것을 강하게 말렸습니다(마태 16,21-22).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라고

 

말씀하시면서(마태 16,23), 그를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사탄이 된 것도 아니고, 마귀 들린 것도

 

아니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것도 아니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수님이 고난을 겪으시는 것을

 

걱정해서 그랬던 것이지만, 예수님께는 그것이

 

심각한 ‘사탄의 유혹’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일은, 사탄이 베드로 사도의 ‘선의’를 악용해서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귀의 유혹은 그렇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니까, 한마디 말씀만으로도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실 수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일이 바로 ‘기도’입니다.>

 

 

 

4) 17절의 ‘뿌리’는 ‘실천’을 뜻합니다.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는 생활’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믿음과 실천이 일치되어 있는 사람은

 

환난과 박해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금방 무너집니다(마태 7,24-27).

 

<무너진다는 것은 믿음을 버리고 멸망한다는 뜻입니다.>

 

19절의 ‘세상 걱정’은 먹고사는 일에 대한 걱정을 비롯해서,

 

인생살이에서 겪는 여러 가지 걱정들을 가리킵니다.

 

‘걱정을 극복하는 방법’도 기도입니다(필리 4,6-7).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길’이 될 때도 있고,

 

‘돌밭’이나 ‘가시덤불’이 될 때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또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낙담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넘어졌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나쁜 땅’이었다가 ‘좋은 땅’으로 변화되어서

 

성인품까지 오른 분들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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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3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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