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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간 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학자 기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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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간 수요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학자 기념] 마르 4,1-20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각각의 구절이 어떤 의미인지는 예수님께서 이미 성경 본문 안에서 충분히 설명해주셨으니, 오늘은 ‘하느님과 나 사이의 거리’라는 관점으로 전체적인 맥락에서 살펴봅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다윗 임금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 머무르시도록 그분의 집인 ‘성전’을 짓겠다고 하자, 하느님께서 그를 축복하시는 장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 임금에게 큰 은총과 복을 베푸시는 한편, 그에게서 한 집안을 즉 그의 이름이 대대로 전해지는 위대한 가문을 세워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더 나아가 다윗의 자손들이 부족하여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들에게서 당신 자애를 거두지 않으시겠다고, 그들을 ‘사랑의 매’로 훈육하시어 올바른 길로 이끄시며 끝까지 보살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 점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지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따르고자 노력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고 올바른 길로 이끄십니다. 우리가 부족하여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도 우리에게서 당신 자비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주려고 오신 분이 사람들이 용서받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비유로 말씀하신다니, 그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렇게 말씀하신 건 예수님이 무섭고 차가운 분이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분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지를,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귀기울여 들을 마음이 있는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될 때까지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길 인내가 있는지,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할 의지가 있는지를 보시려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말씀의 씨앗이 내 마음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똑같이 하느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데 왜 사람마다 맺는 열매의 양이 다를까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차별대우 하시는 걸까요? 아니면 타고 난 능력의 차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태양계에 있는 행성들의 온도가 서로 다른 것은 태양이 각 행성을 차별하여 빛과 열을 다르게 내주어서가 아닙니다.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만큼 에너지를 덜 받아서 그런 것이지요.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 말씀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신앙생활을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같지만, 하느님께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는가, 그분과 얼마나 깊은 친교를 맺고 있는가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요. 그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와의 거리를 점점 좁혀 완전히 일치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말씀이 내 안에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고 싶다면,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려 들지 말고 이웃 형제 자매들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실천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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