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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금)
(녹) 연중 제3주간 금요일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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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진리는 입이 아니라 손발에서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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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1-29 ㅣ No.187701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불의 비유를 통해 아주 중요한 영적 법칙을 말씀하십니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그리고 아주 무서운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가진 자는 더 받을 것이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말씀은 영적 세계의 냉정한 법칙입니다. 진리의 빛을 받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는(실천하는) 사람은 더 큰 은총과 지혜를 받지만, 그것을 덮어두는 사람은 있던 믿음마저 말라버리고, 결국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조차 못 하는 영적 맹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 들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바로 뒤에 이어집니다.

내용상으로 보면,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씨가 잘 자라 열매를 맺은 ‘좋은 밭’을 상징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좋은 밭인 사람은 깨달은 진리를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처박아 두지 않습니다.

그것이 온 집안을 비추도록 등경 위에 올려놓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가진 자가 더 받게 되는, 30배, 60배의 소출을 내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진리의 등불을 꺼뜨리는 두 가지 뚜껑이 있습니다. 바로 ‘함지’와 ‘침상’입니다.

함지는 곡식을 재는 ‘됫박’입니다.

교부들은 이것을 ‘계산적인 마음’이나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덤불과 같습니다.

돈 걱정 때문에, 혹은 손해 볼까 봐 계산하느라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침상은 우리가 눕는 곳입니다.

이는 ‘게으름’이나 ‘육체적 쾌락’을 의미합니다.

길바닥이나 돌밭과 같습니다.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어서 말씀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만약 ‘십일조’라는 진리를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침상(게으름/탐욕)에 누운 사람은 귀찮아서

안 하고, 됫박(계산)을 든 사람은 아까워서 안 합니다.

이런 사람은 남에게 십일조를 내라고 권하지도 못합니다. 자기도 안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진리의 빛은 내 안에서 질식해 꺼지고, 더 이상의 은총은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말씀을 듣고도 이 뚜껑을 덮어버려 비극을 맞이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맞이한 결말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영혼이 마비되고 판단력이 흐려져, 스스로 파멸을 선택하게 되는 무서운 저주였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전무후무한 지혜(등불)를 받았지만, 말년에 이방 여인들과의 정략결혼과 쾌락(침상)에 빠져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 찬란했던 지혜를 욕망으로 덮어버리자, 그는 더 이상 지혜로운 판관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의 고통을 보지 못하는 폭군이 되었고, 하느님의 경고조차 무시하는 영적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판단력이 흐려졌고 결국 그가 자랑하던 통일 왕국은 아들 대에 이르러

두 쪽으로 찢어지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지혜를 가졌으나 쓰지 않으니, 그 지혜마저 빼앗긴 꼴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드러나게 하는 ‘등경’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등경은 높은 곳입니다.

내가 편안한 침상에서 일어나고, 내 이익을 챙기는 됫박을 뒤집어엎고 올라가야 하는 희생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5장 16절에서 등경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설해 주셨습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됫박이 ‘나에게 얼마나 이익이 될까?’를 계산하는 마음이라면, 등경은 계산 없이 퍼주는 ‘선행’입니다.

말로만 하는 전교는 됫박 안에서 웅웅거리는 소음일 뿐입니다.

하지만 내 몸을 움직여 가난한 이를 돕고, 자존심을 굽혀 용서하는 그 ‘착한 행실’은 침묵 속에서도 세상을 환하게 비춥니다. 

 

이 등경은 꼭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진리라도 실천하면, 하느님께서는 그 그릇을 넓혀 더 거대한 진리를 담아주십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의 ‘작은 길’을 보십시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핀 하나를 줍더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줍겠다”는 아주 작은 진리를 실천했습니다.

빨래터에서 더러운 물을 튀기는 수녀에게 화를 내는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이 작은 행실들을 등경 위에 올려놓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더 큰 진리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소명이 ‘사랑’ 자체임을 깨닫게 되었고, 24세의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의 박사(Doctor)가 되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작은 핀 하나를 주운 사랑이 전 세계를 품는 선교의 수호자라는 거대한 열매로 되돌려 받은 것입니다.

가진 자는 더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진리는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손과 발로 살아내는 생명입니다.

로렌 아이슬리의 에세이에 나오는 ‘불가사리 이야기’로 강론을 마치고 싶습니다.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해변에 수만 마리의 불가사리가 밀려와 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불가사리를 하나씩 집어 바다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던 청년이 비웃으며 물었습니다.

“노인장, 해변에 불가사리가 수만 마리나 널려 있는데 고작 몇 마리 던진다고 세상이 달라지기나 합니까?”

노인은 집어 든 불가사리 하나를 바다로 힘껏 던지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 불가사리에게는 세상이 완전히 바뀌는 일이지!” 

 

이 해변은 우리 마음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는 수많은 하느님의 말씀들이 불가사리처럼 널려 있습니다.

듣기는 했으나 실천하지 않아 말라 죽어가는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그중 단 하나, ‘용서하라’ 혹은 ‘사랑하라’는 작은 말씀 하나를 집어 실천이라는 바다로 던질 때, 세상은 안 바뀔지 몰라도 ‘죽어가던 말씀’은 완전히 바뀝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을 살린 존재도 바뀝니다. 그렇게 말씀을 행동이라는 바다에 넣읍시다. 한없는 진리가 보이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이 깨달은 작은 말씀 하나라도 침상 밑에 두지 마십시오.

그 말씀을 등경 위에 올려놓으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빛과 진리를 보태어 주실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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