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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수원 교구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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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1-29 ㅣ No.187703

이병우 신부님_"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마르4,22ㄱ) 

'성령의 힘!' 

오늘 복음(마르4,21-25)은 '등불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마르4,21-23)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4,24-25)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냅니다.

 

악이 선을 이기지 못합니다. 악은 선 앞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악(악령)이 하는 일은 분열입니다. 싸움을 일으키고 싸움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선(성령)이 하는 일은 하나됨(일치)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악을 멀리하고 선을 따라가는 사람들, 악령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악을 쫓아다니지 말고, 선을 추구하고 성령을 따라가는 이가 되도록 늘 깨어 있도록 합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살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5,8)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이게 합니다.

 

하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고,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때로는 시행착오도 겪고, 때로는 고통과 아픔의 시간도 보내게 됩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제가 참으로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활로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작용해서 선으로 나아감'(로마8,28 참조)을 다시금 굳게 믿겠습니다♡ 

 

(~ 1마카6,33)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르 4,21-25: 등불은 등경 위에 둔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21절). 등불은 세상을 밝히기 위해 존재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마태 5,14)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한가운데서 빛을 비추도록 부름을 받았다. 

 

빛은 그 본성상 드러나고 퍼져나간다. 숨겨진다면 빛이 아니라, 어둠과 다르지 않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의 말씀은 등불이며, 그 말씀을 받아들인 이는 그 자체로 빛나는 등불이 된다.”(Enarrationes in Psalmos 118,105)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을 품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세상에 빛을 전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가 빛을 비추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신다. “사람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우리의 선행은 단순한 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빛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해설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숨겨지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빛처럼 자연히 드러나야 하고, 드러남으로써 다른 이를 살린다.”(Hom. in Matth. 15,6)라고 가르친다. 또한 성 이레네오는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인간이고,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빛을 보는 것이다”(Adversus Haereses IV,20,7)라고 말한다. 빛을 감춘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는 것과 같다. 빛과 선행, 말씀의 열매는 감출 수 없는 성격을 지니며, 나눌 때 더 커진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24절). 말씀은 우리 안에서만 머물 수 없다. 말씀은 나누고 실천할 때 더욱 깊이 이해되고 풍성해진다. 우리는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 때 그리스도 자신께 드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 바실리오는 “가난한 이의 옷을 덮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네 옷장이 아니라, 가난한 이에게서 훔친 것이다.” (Homilia in Lucam 12,18)라고 하였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께 받은 선물이므로, 나눔은 곧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는 행위일 것이다. 

 

등불은 감추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비추기 위해 있다. 말씀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그 빛은 선행을 통해 드러나고, 나눔을 통해 확산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오늘 우리는 내 마음속에 주님의 빛을 숨기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내 삶이 어둠 속 사람들을 밝히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 각자가 등경 위에 놓인 등불이 되어,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빛을 증거하기를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김건태 신부님_보태어 받을 것이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도, 너무나 상식적인 말씀 앞에 식상해 하거나, 너무나 비상식적인 말씀 앞에 당황할 때가 적지 않으며, 이런 말씀이 성경에 담겨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적시되어 있을 때는, 문제가 다릅니다. 더 생각하고 더 묵상하게 됩니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의에 놓지 않느냐?” 또는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등불을 먼저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등불을 받아들이거나 받아 들고 주위를 비추며 살겠다는 다짐을 한 이상, 숨겨 놓아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그 등불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서 등불이 주위를 밝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름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기도로 시작해서 사랑 실천으로 그 기름을 준비해 나갑니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 저자가 전하는 이 상식적인 가르침을 통해서, 예수님은 더 깊이 있는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마르코 복음서 설계의 진수라 말할 수 있는 메시아의 비밀 구도입니다. 곧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밝혀나가는 여정을 말합니다: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은 지금은 감추어져 있지만, 언젠가 활짝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말씀만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드러내실 것이며, 그 완성의 시간은 수난과 죽음과 부활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입에 늘 붙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반복할 때마다, 우리는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고백함과 아울러,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본다면, 가혹한 논리, 그리스도교 신앙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조금만 들어가 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우리나 우리 주위에서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는 현실로 받아들여집니다. 신앙생활 자체가 그렇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오던 터에, “조금만 쉬었다 가자” 하는 생각에서 쉬기 시작하는 순간, 그 신앙의 정도가 그대로 유지되기는커녕, 조금씩 식어가고 끝내 사라져가는 경우를 우리 자신 또는 주위에서 확인하며, 결국 냉담의 상태에 이르는 가슴 아픈 현실도 자주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달리, 쉬고 싶은 유혹을 떨쳐가며 쉼 없이 기도하고 사랑 실천에 임할 때, 그 안에서 진정한 기쁨과 보람을 느낄 때, 그래서 더 기도하고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 받을 것이다.” 하는 주님의 가르침은 가슴 벅차게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메시아를 등불로 받들어 모시고 사는 신앙인들, 메시아로부터 구원을 이미 약속받은 신앙인들입니다. 이 등불이 더욱 빛을 발하도록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신앙생활, 더 기도하고 더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등불 하나하나는 아무리 작고 초라해 보여도, 하나하나 모이면 세상은 분명 더욱 밝아지고, 살맛 나는 세상 곧 구원의 나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오늘 하루, 세상과 인류 구원이라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실천하는, 구원의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송영진 신부님_<“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너희는 새겨들어라.”>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 4,21-25)”

 

 

 

1)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라는 말씀은, 마태오복음의 ‘탈렌트의

 

비유’에도 있고(마태 25,29), 루카복음의 ‘미나의 비유’에도

 

있습니다(루카 19,26).

 

‘탈렌트의 비유’와 ‘미나의 비유’에서 이 말씀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종”을 꾸짖는 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진 것 없는 자’는 “신앙인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해석되고, ‘가진 자’는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해석됩니다.

 

“가진 자는 더 받고”는, “은총에 응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은총의 열매를 얻고(구원을 받고)”입니다.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은총의 열매를 얻지 못하고,

 

즉 구원받지 못하고, 처음에 받은 은총을 잃고 멸망을

 

당할 것이다.”입니다.

 

신앙인들이 해야 할 일들 가운데에서

 

첫 번째 일은 ‘기도’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처지나 여건이 안 되어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일을 잘하고, 또 일을 많이 해도,

 

기도하지 않는 신앙인이라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립니다.

 

 

 

2) “가진 자는 더 받고”를 바로 앞의 21절에 연결해서

 

생각하면, 이 말씀은,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을 증언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은 은총을 받을 것이라는,

 

즉 구원의 은총을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는,

 

“복음 선포와 신앙의 증언을 하지 않는 자는

 

자신이 받은 복음마저 잃게 될 것이다.”가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신앙을 증언하는 일은,

 

하면 할수록 자신의 믿음이 더욱 강해지는 일입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금방 체험하게 되는 은총입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안 하면, 믿음이 점점 약해지고

 

희미해지다가 결국 없어집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신앙을 증언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등불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감추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등불을 끄는 것이기도 합니다.

 

남을 비추는 일을 하지 않는 등불은 ‘꺼진 등불’,

 

또는 ‘빛을 잃은 등불’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말은, 모든 신앙인이 전부 다 전문적인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신앙인답게 사는 것 자체가

 

복음 선포이고, 신앙의 증언입니다.

 

반대로, 자신이 예수님의 신앙인이라는 것을

 

감추는 사람은 스스로 등불을 끄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 10,32-33).”>

 

 

 

3)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라는 말씀은, 표현되어 있는 대로

 

읽을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복음 선포를 하라는

 

‘지시’로 읽을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표현되어 있는 대로 읽으면 이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들은 받을 몫이 없다.” 라는 경고 말씀이 됩니다.

 

이 말씀을 ‘지시’로 생각하면, “복음을 숨기거나 감추지 말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라(선포하여라).”입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라는 말씀과

 

“너희는 새겨들어라.” 라는 말씀은, 당신의 가르침을

 

잘 새겨듣고 실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라는 말씀은,

 

“뿌린 대로 거둔다.” 라는 속담과 비슷한데, 좁은 뜻으로는,

 

“선행을 실천하면 하느님께서 그 선행에 대해서 보상을

 

주신다.” 라는 약속입니다.

 

하느님은, 물 한 잔을 주는 것과 같은 ‘작은 선행’도

 

잊지 않고 보상해 주시는 분입니다(마르 9,41).

 

넓은 뜻으로는,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 전반에 관한 말씀이고,

 

신앙생활은 결코 헛일이 아니라는 약속입니다(마태 10,30).

 

그런데 ‘주는 만큼’이라는 말만 보면, 우리가 ‘하는 만큼만’

 

보상을 받게 된다는 말씀으로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을 덧붙여서,

 

우리가 ‘하는 만큼만’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훨씬 더 크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가진 자는 더 받고”를

 

다시 생각하면, 이 말씀은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한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은총을 받게 될 것이고”입니다.

 

하느님은 한 번 주신 것을 빼앗아 가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기서 ‘빼앗길 것이다.’는, 누구든지 원하고 노력하면

 

받을 수 있는 ‘큰 은총’을, 그 자신이 받으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못 받게 되는 것을 뜻하는 말로 해석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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