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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0일 수원교구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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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하느님의 나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루에도 여러 번 주님의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정성껏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이후, 곧 모세의 중개를 통해 시나이산에서 계약(옛 계약, 곧 舊約)을 체결하신 이후, 하느님 나라 개념은 서서히 싹트기 시작하며,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첫 임금으로 등극한 이래 임금은 이제 메시아, 곧 ‘기름부음받은이’라 불리기 시작합니다. 이 호칭 속에는, 임금이 하느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구현하여 그분 나라를 세우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소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정의로운 임금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이 기대를 멀리한 임금들이 오히려 대다수라는 체험을 바탕으로, 서서히 그야말로 이상적 메시아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복음 선포의 첫 말씀으로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고 외치십니다. ‘가까이 왔다.’ 하는 표현 속에는, 하느님 나라는 어느 정도 시간과 더불어 이해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행적을 보이시고 끝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와 ‘왔음’을 선포하실 것이나, 그 완성을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며, 이 시기를 우리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는 증언의 시기, 사도들을 기초 삼아 세워진 교회의 시기라 일컫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복음서에서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 말씀을 여럿 대할 수 있으나,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아무도 모르게 성장하여, 엄청난 결과를 보여줄 나라’로 규정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나라는 완성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분명히 완성되어 가며, 완성된 그 나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라는 개념 앞에서 우리가 우선 받아들여야 할 고백은, 그 나라는 완성될 것이며 그 결과는 놀라울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기초에는 우리 인간이 아니라, 또는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가 아니라,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를 직접 세우신다는 고백이 자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또는 교회에게 하느님 나라를 세울 사명이 부여되었다면, 정녕 가능할지 의심스럽고 불안하기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자께서 세우실 것이니, 우리는 하느님 나라 건설을 확신합니다. 그렇다고 수수방관의 자세를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교회는 하느님 나라 건설에 초대된 일꾼들입니다. 성자께서 세우시는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열심히 기도하며, 사랑 실천을 통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일꾼들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권고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힘써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자께서 세우시니, 우리는 그 나라 완성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다시금 피력하고 고백합니다. 완성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과 불안감 모두 떨쳐 버리고, 우리의 작은 기도와 부족한 사랑 실천을 기꺼이 받아들이시며, 더욱 분발하도록 격려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하느님 나라 건설에 초대된 일꾼답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주위를 살피고 밝혀나가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르 4,26-34: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사람은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씨 뿌리는 이와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려주신다. 씨앗은 땅에 뿌려지면 농부가 자고 일어나는 동안, 즉, 그의 지식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스스로 싹이 트고 자라난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28절). 하느님 나라의 성장은 우리의 계산과 기술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선한 의지를 품고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 씨앗이 우리 안에서 자라지만, 그 성장을 우리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우리 안에서 시작되는 믿음은 하느님이 뿌려주신 씨앗이다. 그것이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는 것도 하느님이다.”(Enchiridion 32)라고 말했다. 인간의 협력은 필요하지만, 그 성장은 은총의 비밀스러운 작용 안에서 이루어진다.
겨자씨의 비유는 더욱 분명하다. 가장 작은 씨앗이지만,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커다란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인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를 교회에 비유하며, “작은 무리로 시작된 교회가 지금은 온 세상을 뒤덮는 나무가 되었다.”(Hom. in Matth. 46,2)고 설명한다. 실제로 교회는 갈릴래아의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모든 민족을 품는 하느님 나라의 표지가 되었다. 교회의 존재 자체가 그 나라의 씨앗이요 시작이다. 씨앗이 자라려면 농부가 뿌려야 하고, 동시에 땅과 햇볕과 비가 필요하듯이,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응답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안에는 어떤 씨앗이 자라고 있느냐?”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였다면, 그 말씀은 이미 우리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하지만 그 성장을 당장 눈에 보지 못한다고 낙심할 필요는 없다. 씨앗은 땅 속에서 보이지 않게 자라다가 때가 되면 싹을 틔우듯이, 은총은 보이지 않게 우리 안에서 역사한다.
또한 우리는 내 안의 밭을 돌보아야 합니다. 씨앗이 자라도록 가시덤불을 제거하고, 말씀을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느님 나라의 성장은 우리의 손으로 강제로 만들 수는 없지만, 우리가 협력할 수는 있다. 그 협력이 바로 기도, 말씀의 묵상, 사랑의 실천이다.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처럼 작게 시작되지만,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큰 나무가 된다. 그 나무는 곧 교회이며, 우리 신앙인의 삶이다. 오늘 우리는 내 안에 뿌려진 씨앗을 돌보며, 하느님 나라의 성장에 협력해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처럼 “우리가 뿌리고 물을 줄 수는 있으나, 성장하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De catechizandis rudibus 4,8).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은총 안에서 신뢰하며, 씨앗이 자라 열매 맺을 날을 기다리도록 하여야 한다.
이병우 신부님_"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4,27)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 복음(마르4,26-34)은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마르4,33-34)
'비유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그와 비슷한 다른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여러 비유, 곧 듣는 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일상의 소재들을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그 본질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복음, 곧 두 비유인 '저절로 자라나는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모든 것의 중심에 절대자이신 하느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께서 계시고,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역사하심'이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결정적으로 하느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이룰 수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어머니이신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우리 눈에는 그것이 저절로 자라나는 것 같지만, 하느님께서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주시고, 바람을 주시기 때문에 자라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씨앗이 썩고 자라나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수돗물과 하늘 물은 정말 다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6,33-34)
오늘도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 모든 힘의 원천이시요 근본이신 하느님 손 잡고 화이팅 합시다!
(~ 1마카6,48)
송영진 신부님_<‘하느님의 일’은 인간의 생각과 이해를 초월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마르 4,26-34).”
1)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는,
“하느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데”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저절로’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많지만,
이 세상은 ‘삼라만상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주권 아래에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과 섭리와 상관없이
저절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도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라는 말씀은,
인간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알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전부 다’ 모르는 것은 아니고,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먼저 믿으면, 언젠가는 깨닫게 되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는,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은 하느님께 맡겨 드리라는 가르침으로 읽을 수도 있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동참하고 협력하라는 가르침으로
읽을 수도 있는 비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 없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창조 사업의 완성은 인간들과 함께하기를 바라십니다.
특히 인간 구원 사업은, 인간들이 능동적으로 동참하고
협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 몸이 자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몸이 언제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모릅니다.
작은 어린이가 조금씩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어나고 하면서
어른이 되는데, 그 과정은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몸의 성장’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혼의 성장’과
‘신앙의 성장’도 그렇고, ‘전체 교회의 성장’도 그렇습니다.
그 ‘성장’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주셨습니다.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에페 4,11-14ㄱ.15-16).”
<신앙인답게 살고,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각 개인의 성장은 곧 교회의 성장이고,
하느님 나라의 성장입니다.>
3)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춘 비유이고, ‘겨자씨의 비유’는 ‘결과’에
초점을 맞춘 비유입니다.
우리는 ‘겨자씨의 비유’를 읽을 때 겨자씨가 작다는 것과
겨자나무가 크다는 것만 생각할 때가 많은데, ‘겨자씨의
비유’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다.”
라는 가르침이고, 예수님께서 겨자씨를 예로 삼으신 것은,
가르침을 좀 더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겨자씨의 비유’에서, 동방박사들의 이야기에 인용되어 있는
예언이 연상됩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마태 2,6).”
인간의 눈으로만 보면, 베들레헴은 보잘것없는
시골 마을이지만, 메시아께서 태어나신 곳이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고을’입니다.
‘겨자씨의 비유’는 씨앗만 보지 말고 나무를 생각하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위대한 일’입니다.
짧은 기도 한 번이라도, 작은 선행 한 가지라도,
모두 위대한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주춧돌’만 중요하고 위대한 것은 아닙니다.
눈에 잘 뜨이지 않는 작은 벽돌 하나, 하나도
모두 중요하고 위대합니다(에페 2,20-2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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