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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왜 창녀가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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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복음 21장 31절에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실 이 예수님의 말씀이 정말 백프로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인식이 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확신을 하는 건 있습니다.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할 겁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이해가 잘 되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하니 그럴 겁니다. 제가 이번에 목욕탕 청소를 하면서 어느 날 이 말씀이 정말 맞는 말씀이겠다고 피부로 절실히 와 닿을 정도로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배운 게 있다고 말씀드린 게 이 사실입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제가 알려드리고 싶지 않아서 알려드리지 못 하는 게 아니라 참으로 표현하기가 너무 민망해서 도저히 말씀을 드리지 못 할 뿐입니다. 사석에서 개인적으로 남자 형제에게도 말하기 민망합니다. 그런데 여긴 자매님들도 다 오시는 공간이라 더더욱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내용을 표현은 못 하겠지만 제가 알게 된 그 사실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게는 최대한 한번 설명해보겠습니다. 실제 제목을 어떻게 달까 고민을 많이 했고 또 달고 싶은 제목은 아주 깁니다. 제목이 아니라 문장처럼 돼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지었습니다. 이 제목에 사실 세리가 빠졌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도 있습니다. 그 이유까지 서술하면 삼천포로 너무 많이 흘러 생략하겠습니다. 일단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죄를 짓는 것은 슬퍼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있지만 죄에 빠지는 것에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이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같은 소리이지 않나 하고 생각하실 겁니다. 근데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게 아주 어렵습니다. 저는 이 미묘한 차이가 무엇일지를 엄청 고민하고 고민했는데 바로 작년에 탕청소를 하면서 우연히 어떤 한순간에 알게 됐습니다. 그때 바로 왜 예수님이 창녀와 세리가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신 그 말씀이 이해가 됐던 것입니다. 그 근거를 우회해서 표현하겠습니다.
일단 우리는 먼저 죄를 짓는다는 것과 죄에 빠진다는 것과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지어서 표현하지 않고 둘 다 다 같이 통용해 사용하곤 합니다. 이건 절대적으로 다릅니다. 이 자체를 설명하려면 아마도 A4 복사지 다섯 장 정도의 분량을 설명해야 할 정도로 서술해야 할 분량입니다. 제가 고민한 것을 메모한 분량을 보니 그 정도 나올 것 같습니다. 그걸 표현했다가는 자지러질지도 모를 겁니다. 그또한 생략하겠습니다. 여기서는 결론만 아셔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죄를 짓는다고 할 때 이 표현은 죄를 짓겠다고 적극적으로 의욕을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데 그것보다도 소극적인 의욕도 해당됩니다.
사실 이걸 이해하려면 세상 형법 법률인 '미필적 고의'를 설명드리고 이걸 표현하면 잘 이해가 될 수 있을 건데 그것도 생략하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것입니다. 죄를 아무리 짓는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의욕을 해서 짓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분명 있습니다. 이건 자기가 분명 죄라는 것을 인식을 하고 인용을 하는 것입니다. 미필적 고의와 같습니다. 하지만 죄에 빠지는 건 조금전 언급한 내용 둘 다 해당이 될 수도 있지만 해당이 안 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식은 하지 않았는데 또 몰랐는데 처음에는 말입니다. 근데 나중에 결과를 보면 그게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닌데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모르고 지은 죄'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바로 이게 죄에 빠진다고 했을 때 그때의 죄입니다. 사실 이 표현도 정확한 건 아닌데 이 정도 이해만 하면 이해를 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실 겁니다. 이런 전반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어떤 중요한 사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짓는 것은 경계를 하고 두려워하고 회개를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죄에 빠진 것은 회개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절대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죄책감을 가지고 아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 다시 말해 죄에 빠지긴 빠지되 그게 또 반복이 돼 더더욱 죄인으로 되지만 그게 구제불능의 죄인같은 그런 죄인으로 변질은 잘 되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죄인이냐? 바로 이런 죄인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걸 뼈저리게 알 수 있고 언젠가는 회개하고 또 자기가 죄를 짓게 돼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는 사실을 눈물로 통감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죄를 지은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죄에 빠진 사람보다는 회개를 할 확률이 더 낮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창녀와 세리가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잘 이해가 안 되시면 여러 번 읽으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까지 글을 올려도 여러 번 읽어보시라고 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럼 왜 이런 사실이 중요할까요? 바로 같은 죄인이라도 회개를 하는 죄인이 있고 회개를 하지 않는 죄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표현합니다. 죄를 짓고 나서 말입니다. 본인뿐만 아니라 이 죄를 누군가 옆에서 말할 때 흔히들 죄를 지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하나 숨어 있습니다. 꼭 알아야 할 내용입니다.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건 맞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런 상황에서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은 일단 금물입니다. 그런 생각보다는 오히려 단호히 거부를 해야 합니다.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심에는 무의식 상에 죄를 지어도 무방하다고 하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개전의 정이 있기 아주 힘듭니다. 하지만 거부를 하는 사람에겐 회개를 하는 시점도 훨씬 그 사람보다도 더 빠르게 이루어집니다. 빨리 자기의 죄를 뉘우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녀가 먼저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표현이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창녀가 아닌 사람이 창녀를 보고 창녀라고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이 모르는 게 있습니다. 자기도 창녀라는 사실입니다. 이건 여자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남자도 해당됩니다. 남자라면 뭐 창남 이런 언어유희가 아닙니다. 그럼 그렇게 인식을 하고 보는 사람도 창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백 번 양보해 그 사람이 창녀라고 해도 그 창녀가 세상에서 비난을 받는 건 몸을 팔았다고 해서 고운 시각으로 보지를 않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보는 사람은 몸은 안 팔았다고 자신은 창녀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기에는 남자도 해당됩니다) 몸을 팔았다고 해서만 창녀가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을 파는 것도 영적으로는 창녀에 해당됩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남녀 불문하고 다 예수님의 신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것도 영적으로는 창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잘 안 되시면 비근한 예 하나를 들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거룩한 성전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거룩한 성전이 되기는커녕 온갖 세상 유혹에 빠져 그 유혹에서 허우적거리면 바로 그게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게 육적으로 타락한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는 바로 세상 육적인 쾌락에 마음을 파는 것과 동일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몸만 판다고 해서 창녀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도 다 창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창녀를 더럽다고 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경시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에 앞서 자신도 예수님 앞에서는 창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육적으로는 창녀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려운 내용인데 여러 번 읽으보시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시고 공감이 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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