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5일 (목)
(홍)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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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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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6-02-04 ㅣ No.187811

[연중 제4주간 수요일] 마르 6,1-6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오늘의 제1독서에서 다윗 왕은 자기 휘하의 장수 요압을 시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다니며 인구를 조사하도록 합니다. 왕으로써 자기 나라에 백성이 얼마나 있는지 그 ‘숫자’를 알고자 한 것입니다. 이런 ‘인구조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널리 행해지는 당연한 ‘행정절차’로 여겨지지요. 그런데 다윗은 그로 인해 하느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엄한 벌을 받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은 세상의 방식이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숫자를 바탕으로 자기 능력을 파악하려 드는 시도의 밑바탕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능력에만 기대지 않겠다는, 이제는 그분 뜻에 무조건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중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권능이 아니라 ‘백 삼십만’이라는 병력의 숫자가 곧 이스라엘의 힘을 상징하게 되었고, 전쟁을 벌일지 말지는 하느님의 의중과 뜻을 헤아리며 따르는 게 아니라 적군과 아군의 숫자를 헤아리며 그 유불리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인 왕이 결정하게 되었지요. 그런 결정이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 겁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며 그분 뜻을 따르려고 하지 않고, 숫자를 기준으로 하는 계산과 예상을 바탕으로 살면, 우리 삶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현존과 권능이 머무를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섭리를 보고 경탄할 일도, 그분의 신비를 깨닫고 감동할 일도 없이, 늘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좁은 범위 안에서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게 되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자렛 고을 사람들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조건으로만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과거의 기억들로만 그분을 판단했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께서 심오한 지혜와 놀라운 능력을 갖춘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었음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출신이나 배경이 별 볼일 없었다는 이유로, 그분의 과거를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무시하고 폄훼하며, 그분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려고도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게 전부라 여기고,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만 보려고 하는 편협하고 편향적인 모습입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족함에서마저 ‘선’을 이루시는 그분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모든 주도권을 넘겨드리고 철저히 그분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과 그분 뜻에 나를 활짝 열어야 주님께서 나의 믿음을 통해 당신이 원하시는 모든 걸 하실 수 있는 가능성을 활짝 여십니다. 그렇게 내가 주님과 함께 걷는 길에서 마주하는 모든 일이 기적이 되고 은총이 되지요. 주님께서 나자렛 고을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실 수 없었던 건 그분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분께 대한 나자렛 고을 사람들의 믿음이 부족해서였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굳게 믿고 그분께 내 모든 걸 맡겨 드려야겠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시도록 그분께 철저히 순명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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