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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금요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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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금요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마르 6,14-29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는 공통적으로 ‘왕’이 등장합니다. 이 두 왕은 여자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여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큰 죄를 지었지요. 인간은 부족하고 약한 존재이기에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죄로 인한 결과는 극명하게 나뉘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그 죄를 극복하고 올바르게 살아 좋은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죄의 어둠 속에 갇혀 더 큰 잘못들을 저지름으로써 씻지 못할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집회서에 등장하는 다윗 왕은 전자에 속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수를 물리치고 나라를 강건하게 만든 그의 위대한 업적들을 찬양하지요. 그러나 다윗 왕이 그토록 찬양받는 이유는 그런 대업을 이루어서만이 아닙니다. 다윗이 존경과 사랑을 받은 이유에 대해 집회서의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모든 일을 하면서 지극히 높으신 분께 영광의 말씀으로 찬미를 드렸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 다윗이 가장 잘한 점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써 하는 모든 일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일을 억지로 혹은 마지못해서 하지 않고 자신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기꺼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랬기에 탐욕에 빠져 큰 죄를 지었음에도 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사랑과 순명이라는 보속으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딛고 일어서서 다시금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는 후자에 속합니다. 그는 탐욕에 빠져 오로지 순간의 만족만을 추구했고, 하느님의 뜻보다는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았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늘 주눅든 채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을 만나 죄를 용서받을 기회, 자기 죄가 남긴 피해와 상처를 사랑으로 보속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능력과 조건에 기대어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자기 능력으로는 요한이라는 무고한 의인을 죽인 죗값을 치를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포자기해 버린 것이지요. 그렇게 어둡고 괴로운 죄의 심연 속에 완전히 갇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인간은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이미 죄를 지어 발생한 일들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헤로데처럼 자포자기 하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목을 벤 요한이 되살아나 나에게 복수를 하러 오는구나’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주눅들어 있어서도 안됩니다. 내가 죄를 지어 남긴 자국을 사랑과 자비로 씻어 다시 깨끗하게 만들어주실 수 있는 분께 모든 것을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분 앞에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저지른 잘못들을 솔직히 고백하며 진심으로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소명으로 맡겨주시는 사랑의 보속들을 최선을 다해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윗처럼 내가 저지른 잘못들을 딛고 일어서서 다시금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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