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0일 (화)
(백)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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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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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2-09 ㅣ No.187894

얼마 전 평신도 신학자인 주원준 교수님의 고대 근동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서기 2026년을 살고 있습니다. 이 연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한 사건을 기준으로 시작된 시간의 흐름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공간에서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사건, 바로 그 사건을 중심으로 인류의 시간은 새롭게 정리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500년 전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예고되었습니다. “한 여인이 아이를 잉태할 것이며,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불릴 것이다.” 복음사가는 구약성경이 신약성경의 사건을 미리 품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갑작스러운 비극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어져 온 긴 역사 안에서 준비된 구원의 여정이었습니다. 신약의 이야기는 구약이라는 밭에서 건져 올린 보물과 같습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부모님의 사랑과 기다림이 있었던 것처럼, 새로운 계약이 있기까지는 오래된 예언과 인내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그 시간 속에 담긴 하느님의 뜻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주원준 교수님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구약성경이 형성된 시간과 공간은, 그보다 2,000년 앞선 고대 근동의 문화와 문명의 틀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합니다. 천지창조 이야기, 카인과 아벨 이야기, 바벨탑 이야기, 대홍수 이야기, 모세의 이야기는 고대 근동의 서사시, 특히 길가메시 이야기와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서양 문명의 출발을 그리스와 로마에서 찾지만, 고대 근동의 문명은 그보다 2,500년이나 앞선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성경보다 앞선 문명과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 성경이 그런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우리의 신앙을 흔들지 않습니까?” 이에 대해 교수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실(Fact)과 진리(Truth)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성경은 연대기적 기록을 위한 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과 어떤 관계를 맺으시는지를 증언하는 진리의 책입니다.

 

예전에 읽은 실험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원숭이 우리 안에 바나나를 매달아 두고, 바나나를 따려 하면 위에서 물이 쏟아지게 했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원숭이들은 나무에 오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후 원숭이를 하나씩 바꾸었지만, 새로 들어온 원숭이는 이유도 모른 채 다른 원숭이들에게 맞았습니다. “원래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라는 규칙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은 당시의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율법이 왜 생겼는지, 누구를 살리기 위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조상들이 지켜왔으니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사람을 얽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장애인과 병자, 가난한 이들, 고아와 과부에게는 예외 없는 규칙이 아니라, 자비와 배려가 먼저여야 했습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은 단순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녀 스콜라스티카의 일화는 이 말씀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 줍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오빠인 성 베네딕토와 1년에 한 번 만나 영적인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날도 깊은 대화를 나누던 중 날이 저물었습니다. 수도 규칙에 따르면 베네딕토는 밤을 넘기지 말고 수도원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스콜라스티카는 더 머물며 하느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베네딕토가 규칙을 이유로 거절하자, 스콜라스티카는 말없이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맑던 하늘에 폭우가 쏟아졌고, 베네딕토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베네딕토는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셨군요.” 이에 스콜라스티카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오빠에게 청했지만, 오빠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청했더니 하느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이 일화는 규칙을 무시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규칙보다 더 높은 자리에 사랑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차가운 규칙보다, 사랑으로 이어지는 만남을 더 기뻐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전통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전통이 사랑을 가로막을 때, 그 전통은 이미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법과 원칙을 넘어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희생하는 이들이야말로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은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 안에서 시간의 길이와 공간의 위치는 결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진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말과 행동이 규칙에 머무르지 않고, 하느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은 말과 행동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율법의 껍질에 머무르지 않고 사랑의 정신을 보게 하소서. 규칙을 지키는 신앙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믿음을 살게 하소서. 성녀 스콜라스티카의 전구로, 오늘 우리의 삶이 자비와 진리의 증언이 되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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