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0일 (화)
(백)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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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말보다 아름다운 사랑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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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00:54 ㅣ No.187905

 

지난 목요일 제가 영세 받은 본당에서 한 자매님의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레지오장으로 했습니다. 8시 30분부터 묵주기도를 시작으로 마지막 레지오 단가를 끝으로 마친 후에 일반 장례미사를 하고 난 후에 화장장으로 이동 후 화장을 하셨습니다. 이번에 조사를 저를 안아주신 자매님이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당에서 상이 나면 장지까지 많이 가봤지만 이번에 이분이 화장장까지 오신 건 제 기억으로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자매님이라고 하긴 그런데 천주교는 특별한 호칭이 잘 없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고인이 되신 자매님을 화로에 들여다 보내드린 후에 같이 간 본당 식구 일행은 연도를 바쳤습니다. 바친 후에 식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하는데 몇몇 자매님들이 제 옆에 있었습니다. 언제 다시 올거냐고 하셔서 제가 그간 있었던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해드렸습니다. 한 자매님은 성가대에 계시는데 항상 성가대 2층에서 저를 보게 되면 봉헌 때나 영성체 때 말입니다. 항상 흐뭇해하시며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집 자식이라도 탐이 날 정도로 좋아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참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은 어렵게 시련을 겪게 하신다고 하시면서 밥을 먹는데 한 손으로는 테이블 아래 제 허벅지 위를 쓰다듬어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애완견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개를 쓰다듬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성별이 바뀌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인데 이게 자매님이 하시면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행복합니다. 이 나이에 어떻게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 게 말입니다. 이런 게 바로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아름다운 사랑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사랑이나는 건 그냥 순수하게 신앙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 저를 간혹안아주시는 분, 자매님이 몇몇 자매님과 먼저 가셔야 된다고 하셔서 제가 입구까지 모셔다드렸습니다. 

 

중간에 우리 본당 지휘자님이시고 교구 성령봉사회장님이 모시다가 제가 중간에 계단을 내려가셔야 되어서 제가 부축해드렸습니다. 지휘자님이 재미있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 와따, 총각이 잡아주니 가만 있네 "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웃고 말았습니다. 제가 자매님을 제 왼손 팔을 자매님 오른팔과 가슴 옆구리 사이로 넣어 제 팔을 지팡이처럼 지지할 수 있게 부축해드렸습니다. 이게 왠 일입니까? 자매님의 정확한 연세는 모르겠지만 최소 여든 셋은 넘기신 분이십니다. 제 팔에 가해지는 근력이 엄청 좋았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근력이 아주 좋습니다. 정말 건강하시네요. " 그 연세에 그 정도 근력이면 이건 특별한 지병이 없다면 백세까지도 건강하게 사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 저는 놀란 게 있었습니다. 이분은 저한테 말을 한 번도 놓아본 적이 없으십니다. 예를 다해 깍듯이 대해주십니다. 제가 항상 말씀을 놓으시라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근데 이번에는 어떻게 갑자기 아들한테 이야기하시듯 그냥 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게 참 좋았습니다. 

 

제가 차까지 배웅을 해드린 후에 제 등을 또 어루만져주셨습니다. 혼자 살아도 밥 잘 챙겨먹고 건강하게 생활하라고 하시면서 계속 어루만져주셨습니다. 이처럼 두 분의 이런 행동은 저는 마치 사람의 손을 통한 것은 맞지만 성모님의 손길처럼 느꼈습니다. 성모님께서 이 두 분의 손을 빌려 대신 저를 위로해 주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힘들긴 힘들어도 이겨내보려고 했습니다. 

 

어제 주일 오후에는 부재중 전화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머니처럼 여기는 자매님이셨습니다. 예전에 언급했던 분이십니다. 나에겐 어머니가 셋인데 낳아주신 어머니, 성모님, 그리고 이분 이렇게 언급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보다 스물두살 더 많으십니다. 2주전 주일과 어제 주일 두 번 다 보이지 않아서 전화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자주 계속 본당에 갔기 때문에 계속 나오나 싶었는데 보이지 않아서 전화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올해 이젠 일흔일곱되십니다. 예전에는 화장을 잘 안 하시는데 요즘은 화장을 하십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요즘 안 하시는 화장도 하시니 더 화사해 좋다고 했습니다. 제가 전화를 못 받아 오후에 전화를 드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후에 통화를 끝내고 나서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최근에 대부를 통해 들은 악의적인 소문에 대해 넋두리를 했습니다. 정말 그래 가지고 어떻게 살 수 있겠느냐 하시면서 그냥 완전히 이 본당을 잊고 다른 본당으로 가서 신앙생활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그러고 싶지만 저는 어떻게 해서도 결국 이 본당에 남고 싶다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저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칠 때까지 그리고 용서를 청하는 날이 올 때까지 이를 악물고 버티겠다고 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지금 그런 십자가를 허용하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성가대에 계신 자매님이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이 정말 베드로를 사랑하는 것 같다는 그 말씀처럼 사랑하는 자식에게는 오히려 더 고난을 겪게해 주시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봅니다. 저를 정말 사랑하시는지는 잘 모릅니다. 

 

지금까지 세 분의 자매님의 이야기를 언급했습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분은 제 등을 어루만져주시거나 아니면 허벅지를 어루만져주셨고 한 분은 제 마음을 알아주셨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말입니다. 이 세분의 행동은 바로 말로 하는 형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이 아닌 가슴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신 것입니다. 살과 살이 맞닿아서 하는 사랑 전달과 하나는 전화를 통해서 이심전심으로 제 마음을 알아주시고 이해해 주시는 것 말입니다. 바로 이런 게 하느님 안에서, 신앙 안에서 하는 아름다운 형제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형제 사랑이 있을까요? 하느님도 감동하실 아름다운 사랑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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