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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신앙은 절대 보험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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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한민국의 모든 천주교 신자를 조사한 게 아니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은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생활을 하다 보면 표본이라는 게 있고 또 샘플이라는 게 있어서 어느 정도 사실과 일치를 합니다. 오늘은 신앙에 대해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걸 한번 되짚고 싶어서 같이 한번 고민을 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를 각자에게 질문을 하면 각각 답변이 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이 원칙을 떠나서 정말 잘못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신앙을 세상에 있는 보험처럼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입니다. 세상에 보험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유는 만일의 위험에 대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만약 신앙을 하나의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생활을 한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번 고민해보시겠습니까? 바로 이겁니다. 만약 우리가 이 땅에서 생명을 다하고 난 후에 다른 세상이 있는데 그 세상에 가 보니 하느님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계시다면 천만다행이고 만약에 없다면 세상에서 신앙생활한 게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마는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하나의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생활한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백번 양보해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번 가정해 묵상을 해봅시다. 실제로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철떡 같이 믿고 신앙생활을 진심으로 했는데 죽고 나서 보니 하느님이 안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 그 사람은 죽은 후에 땅을 치고 후회를 해야 그게 정상일까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세상 살 때 신앙 때문에 인간적인 유혹도 다 떨쳐버리고 오로지 천국을 사모하며 외로운 길을 선택해 묵묵히 인내하며 그것만 바라고 갔는데 천국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요?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억울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세상을 살 때 모든 것을 그런 기준 때문에 살게 된다면 삭막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살았던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을 한번 봅시다.
그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알지는 못했지만 하느님을 모른다고 해서 그럼 그들이 막 살았을까요? 역사를 공부해보시면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죠. 그랬지만 그들은 오히려 오늘날 우리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내용을 더 잘 실천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했던 것은 어떤 하늘의 보상 같은 따위는 당연히 생각지도 못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존재와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인간 속에 있는 양심, 하느님께서 심어놓으신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이 설사 존재하지 않다고 해서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느님 말씀대로 살아도 손해볼 게 없습니다. 다만, 많은 것을 희생했다고 하는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존재 여부를 떠나 그렇게 살았다면 한 인간으로서 태어나 세상을 숭고하게 살다갔다면 그 삶은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신앙을 하나의 보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보험이 성취가 안 됐을 경우에는 똑같은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세상에 보험을 들었는데 평생 건강해서 보험을 청구할 일이 없어서 괜히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근데 이게 과연 그렇다면 손해가 될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바보 같은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보험에 가입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병이 안 걸려서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는 게 더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잘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짧은 한계 속에서 갇혀 그 세계가 자기가 보는 전 세계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읽혀서 세상을 보는 눈이 커야 합니다. 다시 정리를 하겠습니다,. 신앙이 하나의 보험으로 여기게 된다면 절대 온전한 신앙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하느님이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사실 존재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부정하는 의미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과연 우리에게 선포가 된다고 해도 가슴으로 와 닿을 수 있겠는지요? 그냥 단순히 훌륭한 성인의 말 정도에 불과한 좋은 말씀이라는 수준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절대 보험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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