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2일 (목)
(녹)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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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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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6-02-11 ㅣ No.187930

LA 오렌지 교구 어바인 평화의 모후성당엘 다녀왔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분이 보여준 새로운 권위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 권위는 권력과 재력으로 보여주는 권위가 아니었습니다. 그 권위는 율법과 계명으로 보여주는 권위도 아니었습니다. 그 권위는 사랑과 자비로 보여주는 권위였습니다. 겸손과 희생으로 보여주는 권위였습니다. 저는 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서 새로운 권위를 보았습니다. 신부님은 미사 한 시간 전에 성전 맨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마치 전투에서 가장 앞에 서는 군인처럼 보였습니다. 미사 중에는 고요와 엄숙함이 있었습니다. 성체를 모실 때 교우들은 맨 앞줄에 있는 장궤틀에 무릎을 꿇고 성체를 모셨습니다. 매주 수요일에는 라틴어 미사를 봉헌한다고 합니다.

 

미사 후에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신부님은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서 서강대학교에서 어학을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는 중에 한국 성지순례를 다녔다고 합니다. 미국에도 한국의 성지와 같은 성모 신심을 기리는 성지를 만들고 싶은 꿈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당 신부가 된 후에 드디어 그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작년에는 한국에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남종삼 요한 성인의 유해를 모셔 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교우들이 신부님의 열정과 비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반대했다고 합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부님과 함께하면서 지금은 모두 적극적으로 성전 신축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고 합니다. 오렌지 교구에서도 신부님의 열정과 비전을 받아들였고, 성전 신축을 허락해 주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서울대교구에 협력 사제 파견을 오렌지 교구를 통해서 요청하였고, 서울대교구는 제게 사제 파견이 가능한지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제가 본대로 교구에 보고 하였습니다.

 

인문학에서는 이런 순간을 깨달음이라고 부릅니다. 서양에서는 이를 유레카라고 표현합니다. 고대의 한 학자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일상의 한순간에 해답을 발견하고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실험실이 아니라 목욕탕에서, 계산서가 아니라 물의 넘침 속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막혀 있던 사고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노력 없이 주어진 깨달음이 아니라, 오랜 사유와 집중 끝에 주어진 열림이었습니다. 동양에는 염화시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스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였다고 합니다. 모두가 그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을 때, 단 한 사람만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말은 없었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설명이 없어도 이해가 이루어지는 깊은 소통의 장면입니다. 그날, 젊은 사제의 모습은 제게 하나의 유레카였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비전을 받아들이며 함께 걸어가기 시작한 공동체의 변화는 또 하나의 염화시중처럼 느껴졌습니다. 많은 말보다, 먼저 기도하고 먼저 무릎을 꿇는 신부님의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려라.’라는 말씀으로 귀가 먹고, 말을 더듬는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들리지 않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족과 이웃과 소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함께 나누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린 사람은 이제 더 빠르고, 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귀와 입이 열린 사람은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고, 감사의 마음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찾아오는 많은 병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십니다. ‘에파타이 말씀은 열려라!’라는 뜻입니다. 어둠 속에 빛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절망 중에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고독한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희망을 주는 이야기, 위로를 주는 이야기,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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