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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수원 교구 묵상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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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정녕 씻어야 할 것
어제의 복음 말씀은, 식사 전 손 씻는 규정 문제로 벌어진 예수님과 율법 학자 중심의 바리사이들 사이의 논쟁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전통과 율법 준수를 하느님 섬김의 가장 우선적이며 탁월한 방법으로 인식했던 이 적대자들, 심지어 이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이 율법주의자들, 결국 “사람의 규정을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하는,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하는 치욕적인 질타의 대상이 된 이들을 대상으로, 오늘 주님은 계명에 담긴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느님을 참되게 섬기는 길은 어떠한 것인지 가르치십니다.
하느님이 내리신 법(신법)이며 모든 율법의 심장, 율법의 대헌장이라 할 수 있는 십계명은(탈출 20,1; 신명 5,6)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야훼) 하느님이다.” 하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십계명 제정 또는 선포의 목적이 밝혀집니다. 십계명은 인간을 속박하기 위한 법규가 아니라,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처럼 인간을 종살이 생활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규라는 것입니다. 이 열 가지 계명만 마음에 새기고 살아간다면, 구원이라는 선물은 늘 준비되어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많지 않은 이 열 가지 계명, 어찌 보면 최소한의 법규들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꼭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 앞에 서게 합니다. 당신 자녀로 불러주신 하느님만을 섬기고,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안식일(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사람을 죽이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 증언을 하지 말고,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고,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지극히 상식적이며 윤리적이며 인간적인 계명들을 담고 있는 것이 십계명입니다.
세상과 인류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뜻이 담긴, 최소한의 이 십계명 준수를 방해하는 요인들로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작고 모자란 우리의 마음에 그 크신 하느님을 모시기에 부적합한 요소들, 씻어 없애 버려야 할 요소들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달리 말하면 마음을 비워야 비로소 하느님을 모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하는 사실을 밝혀주십니다. 그런데 열거된 이 요소들은 모두 이웃과 올바른 관계 형성을 위해 경계해야 할 것들이라는 점에서, 이웃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할 때 비로소 하느님과의 관계를 의롭게 하고 회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이 구원되기를, 아니 당신이 주시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외아드님을 십자가상 희생 제물로 바치셨던 것입니다. 이 크나큰 선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마음을 채우고 있는 지저분한 것들, 이웃과 의로운 관계를 저해하는 너저분한 것들을 말끔히 씻어내고 정리해야만 합니다.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의롭게 하는 가운데, 구원이라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더욱 넓혀가는, 거룩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르 7,14-23: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외적인 부정함과 내적인 더러움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가르쳐 주신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마르 7,15)
당시 유다인 사회에서는 특정 음식, 특히 돼지고기나 금기 음식물은 부정하다고 여겨졌다. 레위기 11장에 규정된 음식법은 신앙과 정결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었고, 2마카 6장에 기록된 사건처럼 이를 어기는 것은 생명의 위협과도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음식 자체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선언하신다.
그분이 강조하신 것은 입에서 나오는 것, 곧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사실이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21-22절)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대목을 주해하며, 단순히 말과 생각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의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말에 담긴 의도와 악한 뜻이다. 혀는 단순히 도구일 뿐, 마음이 악하면 그 혀도 악해진다.” (Hom. in Matthaeum 51,3) 이는 신앙의 본질이 외형적 규범이 아니라, 마음의 정결과 사랑에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물건, 음식, 의식이 아닌 마음과 행동이 사람의 도덕적·영적 상태를 결정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악은 인간 마음에서 비롯되며, 외부 사물은 본질적으로 중립적이다. 우리의 마음이 악함으로써 외부 사물도 악하게 사용된다.”(Cofessiones, IV, 8)라고 말했다. 교리서도 1851항에서 “참된 도덕적 선과 악은 인간의 의지와 마음에 달려 있으며, 외적 행위만으로 선악을 판단할 수 없다.” 밝히고 있다. 오리게네스는 인간 내면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외부 사물은 우리를 강제하지 않는다. 마음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도 우리를 더럽힐 수 없다.”(Commentarium in Matthaeum 11,12) 라고 해석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자기 내면을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 나는 무엇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가? 나의 생각과 말, 행동은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혹시 외적 규범이나 형식에 안주하며, 마음은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신앙은 단순히 외적인 준법이 아니라, 마음과 행위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드러나는 삶이다. 우리가 마음을 깨끗이 하고, 선한 생각과 행동을 일상에서 실천할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정결함을 경험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 마음 안에서 선한 씨앗을 심고 가꾸어, 하느님과 이웃에게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도록 하여야겠다.
이병우 신부님_"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마르7,20)
'생명의 샘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마르7,14-23)은 '사람을 더럽히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7,14ㄴ-15)
또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7,20-23)
오늘은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1858년 2월 11일에 프랑스 루르드에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서 시골 소녀 베르나데트(벨라뎃다)에게 발현하신 날'입니다.
1858년 2월 25일 성모님께서 베르나데트에게 나타나시어 작은 흙탕물을 가리키며 그 물을 마신 다음 씻으라고 하십니다 그가 그 물을 마시고 씻자, 그곳에서 엄청난 깨끗한 샘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 물을 마시고 바른 사람들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루르드를 찾고 있습니다.
이 땅에 많은 병자들이 있습니다.
AI(인공지능) 시대에 빠르게 의료기술은 더 발전하지만, 점점 더 병자들의 수는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모든 질병은 '마음의 병'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창고에 깨끗한 영인 성령을 담지 못하고, 더러운 영을 담고, 이 악령에 휘둘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유의 샘이시고 생명의 샘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갑시다!
(~ 1마카9,9)
송영진 신부님_<거룩하게(깨끗하게) 살아야 거룩한(깨끗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14-23)”
1)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겉으로만 거룩한 사람이
되지 말고, 겉과 속이 똑같이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거룩한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표현에 초점을 맞춰서 읽으면,
“어떤 물건이나 음식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죄를 짓는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2) 그 당시 ‘부정한 음식’ 가운데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제물을 먹기만 해도 부정한 사람이 되고,
우상 숭배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문제에 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다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까지도 우상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정말로 그렇게 알고 먹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럽혀집니다. 음식이 우리를 하느님께 가까이
데려다 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먹지 않는다고 우리의
형편이 나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먹는다고
우리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의
이 자유가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지식이 있다는 그대가 우상의 신전에 앉아
먹는 것을 누가 본다면, 그의 약한 양심도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을 수 있게끔 용기를 얻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약한 그 사람은 그대의 지식 때문에 멸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1코린 8,7-13).”
바오로 사도의 말을 다시 정리하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은
그냥 음식일 뿐이다. 그러니 그것을 먹는다고 해서
우상 숭배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교리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죄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을 위해
조심해서 행동해야 한다.”입니다.
3) 베드로 사도가 체험한 일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튿날 길을 가던 그들이 그 도시 가까이 이르렀을 즈음,
베드로는 기도하러 옥상에 올라갔다. 때는 정오쯤이었다.
그는 배가 고파 무엇을 좀 먹고 싶어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 베드로는 무아경에 빠졌다.
이어서 하늘이 열리고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땅 위에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는 네발 달린 짐승들과 땅의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드로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저는 무엇이든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베드로에게 다시
두 번째로 소리가 들려왔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사도 10,9-16).”
이 체험은,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라는 계시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부정한 사람들’로 생각해서
접촉하는 것 자체를 피했습니다.
사도들은 처음에는 그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않아서
이방인 선교를 망설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 가운데
처음부터 부정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거룩한 성인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회개하고, 거룩해지려고 노력하는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그 ‘노력’이 교회를 ‘거룩한 교회’로 만듭니다.
4) 예수님의 말씀은, “죄를 짓고 나서 남 핑계를 대지 마라.”
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누구 때문에, 또 어떤 물건이나 음식 때문에 내가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됩니다.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해도 누구 덕분에,
또 어떤 물건이나 음식 덕분에 자동적으로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남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나 자신이 먼저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은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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