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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내 안의 하수구, 왜 나만 향기를 못 맡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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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질문 하나 드릴까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음식물 쓰레기? 아니면 한 달 동안 안 씻은 발 냄새? 아마 오늘 복음을 들으신 분들은 답을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바로 내 안에서 나오는 것들의 냄새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내 안의 하수구 냄새는 못 맡으면서, 남의 집 마당에 떨어진 낙엽만 보고 지저분하다고 난리를 칠까요? 내 코는 남의 집 낙엽 냄새만 맡도록 설계된 걸까요?
여기에 아주 기가 막힌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평소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남의 허물 지적하기가 취미였던 한 노신사가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때 장난꾸러기 손자가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림버거 치즈'를 할아버지의 콧수염에 살짝 묻혀 놓았습니다. 잠에서 깬 할아버지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인상을 팍 쓰며 외칩니다. '아니, 이 방에서 웬 썩은 냄새가 나느냐!' 할아버지는 거실로 나갔지만 여전히 악취가 진동합니다. '이런, 집안 전체가 하수구구나!' 화가 난 할아버지는 맑은 공기를 마시러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하늘을 향해 숨을 크게 들이마신 할아버지는 절망하며 소리칩니다. '세상 전체가 다 썩었어! 지구가 망하려나 보군!' 여러분, 썩은 것은 지구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콧수염이었습니다. 내 코밑에 묻은 오물은 보지 못한 채 세상을 향해 썩었다고 분노하는 것, 이게 바로 예수님이 경고하신 우리의 민낯 아닐까요?
우리는 왜 내 콧수염에 묻은 치즈 냄새를 맡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 뇌가 가진 교묘한 '구획화'라는 방어기제 때문입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뇌는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불쾌한 진실과 일상의 자아 사이에 철저한 방화벽을 세웁니다. 마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집에 와서는 세상에서 가장 자상한 아빠로 변신하는 연쇄 살인마의 뇌 구조와 같습니다. 내 안에 오물이 가득한 방의 문을 꽉 닫아버리고, 그 앞에는 향수 뿌린 화려한 거실을 만들어놓는 것이죠. 그러니 나 자신은 그 방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짜 자신은 그 어둡고 냄새나는 방에 머물게 됩니다. 그곳이 진짜 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그 뒤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과학자들은 아무런 빛도 소리도 없는 방에 사람을 가두는 '감각 박탈' 실험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뇌는 외부 정보가 끊기자마자 스스로 가짜 정보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즉, 존재하지 않는 환각을 보는 겁니다. 눈을 감고 잠을 자도 꿈을 꾸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영혼도 똑같습니다. 하느님과의 정직한 소통, 이웃과의 진실한 관계에서 오는 빛이 없다면 사람은 자신을 거짓의 구획 안에 가두고, 그 껌껌한 방 안에서 영적 환각에 빠집니다. 내 안의 추한 시기와 교만은 전혀 보지 못한 채, 나는 아주 거룩하고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가짜 환영을 보고 사는 것이죠.
이런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델이 바로 영화 '식스 센스'의 주인공 말콤 박사입니다. 그는 영화 내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왜 몰랐을까요? 그가 조금만 자신에게 솔직했다면 금방 알 수 있는 증거들이 넘쳐났습니다. 아내와 레스토랑에서 마주 앉았을 때, 아내는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혼자 계산을 하고 나가버립니다. 그때 말콤은 왜 자신에게 묻지 않았을까요? '왜 내 아내는 1년 넘게 나에게 단 한 마디도 건네지 않지?' 그는 이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 '아내는 나에게 화가 나 있다'는 정교한 가짜 시나리오를 뇌 속에 씁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끔찍한 진실을 직면하느니, 차라리 아내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가짜 고통을 선택한 겁니다. 그는 문이 열리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해도 끝까지 자신을 속입니다. 그가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순간, 그가 만든 안락한 가짜 세계는 무너지고 자신이 유령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타인이나 하느님께 진실해짐으로써 나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다고 가려버리면 기회를 잃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나서 무화과 잎으로 옷을 해 입었을 때도 똑같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치를 가렸다고 믿었지만, 그가 정말 가린 것은 수치가 아니라 '회개할 기회'였습니다. 스스로 만든 껌껌한 콘크리트 벙커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셈입니다. 벙커 안에서는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만든 환상 속에서 "나는 죄 없어"라고 자위하며 살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바로 '투명한 유리 집'에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는 구석에 쓰레기더미가 쌓여도 보이지 않습니다. 냄새가 나도 "밖에서 나는 냄새겠지" 하며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방이 유리로 된 집에 산다면 어떨까요? 집 안에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 구석에 핀 곰팡이 하나가 온 세상에 다 드러납니다. 투명한 집에 사는 사람은 쓰레기를 쌓아둘 수가 없습니다. 눈에 너무 잘 보이기 때문에 즉시 치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결국 정직이란, 내 영혼의 집을 유리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위조지폐 감별사들은 가짜 지폐를 연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진짜 지폐만 수천 번 만지며 그 느낌을 손에 익힙니다. 그러면 가짜를 만지는 순간 소름이 돋으며 알아차리게 되죠. 우리도 진실하게 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 단 한 번이라도 처절하게 정직해본 사람은 타인이 풍기는 거짓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챕니다. 진실만을 접하는 사람은 자신도 자신을 속이지 못하고, 이웃의 거짓도 금세 눈에 들어옵니다. 내 코밑에 치즈가 묻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세상이 썩은 게 아니라 내가 씻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거짓말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남의 집 마당 낙엽만 치우다 인생 종칩니다. 내 코밑에 치즈가 묻어 있는데 세상을 향해 썩었다고 욕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 안에 어둠의 방, 곧 거짓의 방을 만들어놓지 마십시오. 그러면 자신도 그 안에 갇혀 환상 속에서 살다가 망하게 됩니다. 멸망 문턱까지 가서야 정신 차리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오늘 당장 무화과 잎을 벗어 던지고 빛의 자녀로 사시길 바랍니다. 최대한 나의 벽을 다 유리로 대체하십시오. 그래야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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