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4일 (토)
(백)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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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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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07:50 ㅣ No.187986

얼마 전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한 자매님 두 분을 만났습니다. 두 분 모두 오랜 세월 부부로 살아오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분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딸이 둘이었고, 다른 한 분은 아들이 둘이었습니다. 같은 상실의 아픔 앞에 서 있었지만,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은 달랐습니다. 딸이 둘인 자매님은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아직 돌봐야 할 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낮에는 집안일과 아이들을 챙기고, 밤에는 일을 하며 가족을 책임졌습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마음에 담아 두되, 원망이나 후회로 붙잡지 않고 기도로 바꾸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었기에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희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아들이 둘인 자매님은 아직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몇 년만 더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하던 일과 그 빈자리를 계속 바라보며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믿음직한 아들이 있으니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고, 남편이 하던 일도 아들과 함께 이어갈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무엇보다 아내가 기운을 내고 살아가는 모습을 하늘에 있는 남편도 가장 기뻐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자매님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 그 질문 앞에서 완전히 응답하지는 못한 상태였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질문하시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그 질문들은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은 인간이 자기 자신 앞에, 그리고 하느님 앞에 서도록 부르시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질문은 심문이 아니라 초대이며, 단죄가 아니라 회개의 문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아담아, 너는 어디 있느냐?” 이 질문은 아담의 위치를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이 동산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셔서 묻지 않으십니다. 이 질문은 아담의 영적 위치,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죄를 지은 뒤 아담은 하느님 앞에 서지 못하고 숨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찾아 나서시며 다시 관계 안으로 불러들이십니다. 그러나 아담의 대답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가 벗었기 때문에 숨었습니다.”라고 말하며, 곧이어 그 책임을 여인에게, 더 나아가 하느님께 전가합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주신 그 여자가라는 말 속에는 회개가 아니라 변명이 있고, 고백이 아니라 자기 보호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은 변명이 아니라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진실한 응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은 예수님의 신원을 묻는 질문인 동시에, 제자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 앞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대답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며, 관찰이 아니라 관계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고백이 인간의 계산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깨달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의 응답은 예수님이 원하신 응답이었고, 그 응답 위에 사명이 주어집니다. 또 한 번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에게 질문하십니다. “강도당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은 누구였느냐?” 이 질문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이 아닙니다. 율법 학자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한 질문입니다. 율법 학자는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사마리아인이라는 말을 피하지만, 이미 편견을 넘어 진실에 도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옳은 응답은 곧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질문은 언제나 인간을 살리기 위한 질문이지만, 회피하는 응답은 인간을 고립시키고, 정직한 응답은 인간을 사명으로 이끕니다. ‘하느님 앞에서 숨을 것인가, 아니면 서 있을 것인가. 책임을 피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으로 응답할 것인가의 차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느님은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는 어디 있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 “너는 네 형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 구원은 하느님의 질문에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 구원이 우리 삶 안에서 완성되는지는 우리의 응답에 달려 있습니다. 숨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하느님 앞에 서는 용기 있는 응답이 오늘 우리의 신앙을 살릴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미 응답하며 실천의 길을 걷고 있고, 어떤 이는 아직 주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초대하십니다. 머무르지 말고, 한 걸음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아담의 길이 아니라, 베드로와 율법 학자의 길을 선택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회피와 변명이 아니라, 응답과 실천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의로움은 하늘나라를 향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질문 앞에서 숨지 않고 응답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는 참된 의로움으로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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