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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한 산부인과 의사의 삶을 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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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알지는 못하지만 유튜브와 잡지를 통해서 한 남자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의 삶을 보면서 신앙인의 삶을 묵상해봤습니다. 이 선생님은 1년 365일 24시간 언제든지 산모가 출산을 할 수 있도록 항상 병원에서 대기하거나 어떻게 해서든지 그런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는 선생님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그런 와중에 빚에 쪼달리는 상황이고 유튜브 수입으로 병원 재정을 메우는 현실입니다. 처음 이 사연을 접했을 때 감동이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기사에서는 어떤 분은 자기는 자녀 세명을 이분이 다 받아주셨다고 하시면서 만약 딸도 애를 출산하면 이 선생님께 맡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만약 제가 여자이고 또 결혼해 임신을 해 산부인과를 가야 한다면 저는 죽어도 여자 의사에게 갈려고 기를 쓸 겁니다. 제 성격상 그렇습니다. 이처럼 사실 아무리 의사이지만 다른 것은 모르지만 특히 이 과는 다른 과와 달리 어떤 내재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방금 인터뷰한 이 여성분도 처음엔 이처럼 이 의사 선생님께 가는 걸 상당히 꺼려했는데 어쩔 수 없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첫 애를 출산하게 됐다고 합니다. 처음엔 꺼려했는데 이분이 어떻게 해서 그 선생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아닌 추천을 하게 됐는지 그 사연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겠습니다. 사람마다 다 호불호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단정은 할 수 없지만 일단은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이 남다른 점이 있다고 합니다. 돈보다는 생명이 우선이다는 사고입니다.
단순히 이것만 가지고 그렇게 선호하신 건 아닙니다. 산모를 바라보는 입장도 단순히 출산을 앞둔 산모로 보는 게 아닙니다. 같은 말 같지만 하나의 생명을 잉태한 거룩한 존재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태도에서 무한 신뢰를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두 명의 자녀도 이분이 다 받아주셨던 것입니다. 외적인 이미지는 전혀 의사 같은 분위기는 특히나 산부인과와는 더 거리가 먼 그런 느낌이지만 이분의 삶의 철학을 알게 되면 누구에게나 추천을 하고 싶은 그런 의사 선생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친구 중에 의사가 많이 있습니다. 솔직히 동창회나 반창회에서 의사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그 친구의 면을 내려깎는 게 아니라 사실 환자가 환자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환자를 돈으로 본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부를 쌓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건 맞습니다. 다른 의사들도 대부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의대에 학생들을 그동안 많이 보내 지금 의사를 하는 애가 많지만 그들 역시도 인류에 대한 인술을 펴칠 목적으로 의대를 간 게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부와 명예가 따르기 때문에 그 길을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이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도 처음부터 이런 개념으로 의사갸 된 것인지 아니면 처음엔 다들 생각하는 것처럼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의사였는데 어떤 계기로 변경이 된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이런 계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실만 본다면 사실 의사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중산층 서민의 삶보다 삶의 질은 더 떨어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사정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도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살려고 그 어려운 의대 공부를 했냐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하냐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분의 철학을 보면 그런 말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그들이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고귀한 삶의 철학을 평가절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자신은 그렇게 살 엄두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심은 훌륭하다고 인정은 하지만 겉으로는 인정을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살려는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의사 저런 의사가 있는 것처럼 이런 신자 저런 신자가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사례처럼 처음엔 다 의사로 출발을 했지만 지향하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삶의 질도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출발을 했지만 어떻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는 거룩한 신앙인의 길을 걸어가는 신자가 있는가 하면 정반대의 길을 가는 신자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표현을 빌리자면 애초에 세례를 받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탄식을 할 수도 있을 정도로 잘못된 길로 가는 신앙인도 있을 겁니다. 만약 이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이 이 길을 가는지 잘 모른다는 데에 아주 심각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런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개인에게는 비극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길을 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요?
우리 역시도 잘 모릅니다. 그 길을 가면서도 정작 자신은 잘 가고 있는 줄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일까요? 초심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면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는 그 마음 바로 그 초심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신앙인의 길을 가다가 잘못 길을 들어서면 자신이 가는 궤도를 스스로 자가진단을 해 수정하고 제대로 된 궤도로 계속 전진해 나갈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수단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성찰'입니다. 이런 성찰을 기반으로 해서 끊임없이 초심을 기억하는 사람은 우리의 본향인 천국에 무사귀환하겠지만 그렇치 못하게 되면 그의 영혼은 고난과 고초의 길을 걷게 될 운명에 처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영혼은 되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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